부처님의 백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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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부처님을 자세히 보면 보통 사람들에게는 없는 것들이 있다.
우선 부처님의 앞이마 한 복판에 곰보처럼 파인 점이 하나 있다. 이것은 백호라는 것이다.
사실은 이 점에는 털이 붙어 있다. 그리고 이 털이 필요한 때면 마치「 안테나」처럼 길게 뻗어 나간다. 그리하여 먼 곳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알아 낼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것 이다. 부처님에게는 이것 말고도 또 하나 다른데가 있다. 만망상이라는 것이다. 손가락 사이에도 물고기의 지느러미와 같은 막이 붙어 있는 것이다.
부처님이 시름에 빠진 중생을 건져내는데 손가락 사이가 벌어져 있으면 아무래도 곤란하다.
이리하여 되도록 많은 사람을 구제하겠다는 불심에서 마련된 것이다.
이런, 부처님의 이미지는 따지고 보면 사고 팔고의 삶에 시름하는 인간들의 꿈이 만들어 낸 것이라 할 수 있다.
옛사람들이 불타의 세계를 다시없이 동경한 것은 비단 진리의 세계를 기린 것만은 아니다.
사람들의 아무리 사소한 시름이라도 두루 굽어 살펴 주신다고 믿을 수 있기 때문에 불타가 그처럼 소중하게 여겨졌던 것이다.
만약에 부처가 중생의 모든 시름에서 완전히 초연하자 앉아 있다면 그토록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지는 못했을 것이다.
또한 만약에 부처에게 만망상이 없어서 일부의 사람들만 걸러내어 구제해 준다면 그리 고맙게 여겨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혹은 또 다른 부처의 세계를 옛 사람들은 만들어 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지난 11일 박 대통령은 공무원들이 더욱 국민에게 친절하고 성실하게 봉사하도록 지시하면서 아울러 고급 공무원과 가족들이 사치스런 생활로 사회의 빈축을 사는 일이 없도록 논시 하였던 바 있다.
아무리 높은 자리에 있는 공무원이라고 부처만큼 자비로울 수는 없다. 감투의 사다리가 곧 부처에의 길을 뜻하는 것도 결코 아니다.
그러나 사람을 다스린다는 뜻에서는 부처나 공무원이나 별로 다를 것이 없다. 다만 공무원이란 아무리 지위가 높다해도 역시 같은 국민임에는 틀림이 없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같은 국민이면서도 한쪽은 사치스러운 생활을 할 수 있고 또 한쪽에서는 절약과 검소가 강제된다면 이처럼 불합리한 일이 없을 것이다.
적어도 국민들은 그렇게 여길게 틀림이 없다. 공무원이 부처가 못될 바에야 백호가 있을 턱이 없다. 그러면서도 사람들은 국민을 다스리는 사람들에게 백호가 있기를 바란다. 또 백호와 만망상이 있는 정치를 가장 바람직한 것으로 여기고 있다.
이런 정치의 이상상에 조금이라도 접근하려는 성실한 자세가 보일 때 국민은 비로소 공무원들을 따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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