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 뺏기지 않고 곱게 자라고 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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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우리 학교의 김 영감님께서 언젠가 수업시간에 나에게 『처자식 굶겨 죽일 놈』이라는 욕을 하신 적이 있다. 오죽 미웠으면 다른 학생들도 있는 자리에서 그런 욕을 하셨을까만 소견머리 없는 나는 마음속으로 울화 앙앙하여(두고 보라지. 누가 자기 만한 소설을 못 쓸줄 알고) 나도 영감님을 미워하였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영감님께서도 내가 완전히 미운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그 당시 나는 너무나 마음 쉴 곳이 없어서 매일 술이나 먹고, 니나노나 부르고, 이빨이나 깨지고, 여자나 건드리고, 그러다가는 죽고 싶다는 능청이나 부리고 그랬었는데, 그런 나로 하여금 공부를 하게 할 계산으로 영감님께서는 그런 욕을 하셨던 것은 아닌지(영감님께서는 계산을 잘 하시니까) .
곱게 자라고 싶다. 문단이 가진 어떤 병폐에도 물들지 않고, 내가 지닌 여유도 빼앗기지 않고(다른 모든 것은 빼앗기더라도)오뉴월 물 호박처럼 자라고 싶다. 좋은 소설 써서 나를 아시는 분들께 실망을 드리지 않겠다.
××
신문에 사진도 나고, 이름도 실리고하면 울 엄니 입이 째지겠다.

<약력>
▲전남 보성 출생(47년생)
▲서라벌예대 재학 중
▲주소 영등포구 문래동3가58, 9통4반 최정현 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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