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주부'가 장관 인터뷰 해보니… ]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4면

인터뷰에 참석하는 주부들에게 질문 요지를 미리 받아봤다. 질문서는 여성부의 업무보고서 같았다.

호주제 폐지 후의 대안으로 논의되는 1인 1호적제.가족부제 등에 대한 분석부터 여성부 역할에 대한 평가까지 여성계 현안 대부분을 망라하고 있었다. 장관을 인터뷰해야 한다니까 작정하고 예습을 했던 것이다.

"무슨 옷을 입고 가야 되느냐""바지를 입어도 되느냐"고 묻는 주부도 있었다. 기자는 "일부러 미장원에 갈 필요는 없다"며 일일이 어깨에 힘을 빼주어야 했다.

주부들은 지은희 장관을 만나기 전에 사실 적잖이 걱정을 했다. 한국 여성운동의 대표 인물이라는데, 별명이 '지칼'이라는데. 엉뚱한 질문을 던졌다가 장관한테 혼쭐이라도 나는 게 아닌지 지레 겁을 먹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는 기우(杞憂)였다. 주부들은 인터뷰가 끝난 뒤 "아파트에서 마주친 동네 아줌마처럼 친근했다"고 말했다.

주부들은 池장관의 육아 철학이 인상적이라는 반응이었다. '부엌에서 세계가 보인다'는 지적엔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돈아씨는 인터뷰 중간에 "여성부가 번듯한 별도의 빌딩에 있는 줄 알았는데 와보니 더부살이를 하고 있네요"라고 말했다. 여성부는 서울 서초동에서 기획예산처.조달청과 같은 건물을 쓰고 있다. 직원도 1백20명에 불과하다. 池장관은 "장관이 돼서 보니 예산과 인원 부족이 여성부의 가장 절실한 문제"라고 토로했다.

왁자지껄한 분위기 속에서 격의 없이 지나간 1시간50분이었다.여성부가 '가정주부'의 현장으로, 주부들이 '여성부와 여성 문제'의 현장으로 서로 한발짝씩 다가간 순간이기도 했다. 주부들은 여성부에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역할을 해달라"는 주문을 남겼다.

손민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