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오리 명주…한산모시|산지서도 보기 힘들게된「우아한 멋」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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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서천】한산세모시의 소박하고 우아한 멋도 사라질 날이 멀지 않을 듯-. 세모시는 얼마 전까지도 첫손 꼽히는 고유의 여름 옷감이었으나 이제 유일한 산지 충남 서천군 한산지방에서조차 찾기가 힘들 정도이다. 옷감이 세태에 따라 화학섬유로 바뀐데다「가마니 짜기보다 낮은 수익성」때문에 겨우 명맥을 이어오던 슬기로운 솜씨들이 베틀을 떠나기 때문이다.
세모시는 한폭에 실을 l천2백개가 들어가는 섬세한 모시.
한산고을은 세모시 집산지였으나 현재 세모시 실길쌈 농가는 겨우 10여호, 실제 세모시를 짜는 사람은 4명 정도.
옛적부터 해방 직후까지만 해도 1년에 10만여필씩 짰었으나 10년 전부터 새로 나온「나일론」등 화학섬유에 떠밀리기 시작, 작년의 생산량은 겨우 2천8백필에 그쳤다.
생산량이 69년 2만5천필, 70년 1만8천필, 71년9천5백필로 매년 현저히 늘어오다 작년부터 더없이 격감현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현상은 값싼 화학섬유 옷감이 판을 치는 데다 세모시는 드는 일품에 비해 수익성이 너무 낮기 때문이라는 것.
16세 처녀 때부터 세모시를 짜왔다는 신계월씨(39·한산면 지현리)는『한달 걸려 하급품 한필을 짜야 고작 1만2천원 받는다』며 하루 4백원꼴 벌려고 허리 아픈 베틀에 더 이상 앉을 수 없다고 했다.
신씨는 현재 하루 가마니 10장을 거뜬히 짜내 1천4백원씩을 벌고있었다.
이금실씨(41·여·지현리)는『하루날품을 팔아도 새끼 얻어먹고 5백원씩 버는데 누가 뼈아픈 세모시를 짜겠느냐』고 했다.
17세대부터 익힌 세모시 솜씨 때문에 67년 인간문화재14호가 된 문정옥씨(46·여·지현리86)도「1천2백원에 태모시1근, 1백원에 콩1되, 20원에 왕겨 반가마, 1백원에 바디를 사서 1개월 걸려 1만5천원짜리 중품 세모시 1필을 짜 원가를 빼고 나면 일당 4∼5백원 꼴』이라며 고충이 많다고 말했다.
충남도는 지난해 세모시 짜는 솜씨를「기술문화로 지정하여 명맥을 잇겠다고 나서는 사람에게 연간보조금 5만원 1필당 생산장려보조금 2만원씩 주는 방안까지 마련했었으나 안에 그치고 말았다.
원료인 저마의 경지면적이 해마다 줄어들고 있는 것은 더 말할 나위 없다.
한산면 관내에서 69년에 7백94㏊였던 것이 70년 4백㏊, 71년 2백89㏊, 72년2백㏊였다.
또 그나마 한산모시시장의 성립이 잘 안되기 시작한 것은 지난봄부터의 일이라 한다.
전통적으로 매월21일서는 장날이면 저마다 좋은 세모시를 사려고 새벽2시부터 모시시장이 이루어졌으나 최근에는 상오7시부터 서는데도 세모시는 한두필, 일반모시 10여필 비칠까 말까하는 실정이라고 한다.
충남조업 조합장 이선직씨(62)는『서천관내 길산·한산·문산·추동·한천 등 5개 모시시장에 여름 내내 세모시 10필이 못나왔다』고 했다.
세모시 값은 상품이 2만원내외, 중품 1만5천원 정도, 하급품 1만2천원 안팎. 인간문화재 문씨에 의하면 세모시는 한 폭에 실올 수가 1천2백개(중모시 7∼8백올, 막모시 5백올)여서 직조과정이 까다롭다는 것이다.
태모시를 이빨로 머리칼보다 더 가늘게 삼은 다음 솔로 생콩풀을 엷게 바르는 일이 어려운 일이라 한다.
이어 왕겨로 일군 불위 20㎝높이에서 서서히 말린 실올로 지하 1m깊이 움집에서 습도를 맞추어가며 짜야하는 까다로운 것이 세모시의 생산과정이다.
『가곡「세모시 옥색치마 금박물린 저댕기에…」가 오래도록 애창되듯 세모시의 멋도 길이 볼 수 있게 됐으면 좋겠다』고 서천문화원장 이규문씨(58)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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