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경제위기 상황에 대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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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 경제는 순전히 지정학적(地政學的) 위험 요인들의 여파로 주춤거리는 듯했다. 그러나 이제는 경제 자체가 본격적으로 악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주가가 하락하고 환율이 급등하는 등 경제심리가 빠르게 악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들리는 것은 SK의 분식회계 조사 결과와 같은 나쁜 소식뿐이다. 그렇지 않아도 기업들의 기가 꺾이고 소비심리가 위축된 상황에 가히 엎친 데 덮친 격이라 총체적 위기론이 나올 만하다.

영어에 '적(敵)에게 겪게 해주고 싶은 처지'라는 표현이 있는데 점점 꼬여가는 우리 경제 상황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닌가 한다. 모두가 어려우나 아직 조율이 채 되지 않은 참여정부의 정책 책임자들에게 특히 힘든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아마추어적인 좌충우돌을 되풀이할 여유가 없다. 경제가 위기상황으로 가는 것을 막기 위한 대비책 마련이 시급하다.

이라크전은 고유가와 세계경제 회복 지연 등으로 우리의 대외의존 경로를 통해 국내 경제를 죄고 있다. 대외여건이 악화될 때 경기 하강의 안전판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되는 게 국내 소비와 투자다. 그러나 소비와 투자 역시 아직 해결의 실마리조차 보이지 않는 북핵으로 인해 얼어붙었다.

이런 가운데 물가상승 압력은 지속되고 있고, 엔화가 강세임에도 불구하고 최근 원화가치는 빠르게 떨어져 원화표시 자산의 이탈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 두 가지 위험요인은 벌써 우리 경제의 올해 모습을 대체로 결정지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시 말해 이 두 문제가 금명간 수습된다 하더라도 남긴 앙금 때문에 올해 우리 경제는 지난해 성장률을 훨씬 하회할 것이다.

북핵 문제가 지속되더라도 이라크사태가 상반기 중 해결되면 일단 유가 하락과 세계 경제의 회복이 예상돼 우리의 수출이 늘고 수입 부담이 줄어들면서 국내 물가 압력이 해소된다는 점에서 국내 경기에 다소나마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하지만 이라크전이 끝남으로 인해 북핵문제가 더 두드러지게 부각되면서 해외 투자자 이탈 등의 현상이 나타나게 되면 환율 불안 및 국내 금융시장 불안이 예상되고 내수부진이 지속될 것이다. 수출실적에 따라 성장률이 달라지겠으나 4% 정도만 돼도 다행일 수 있다. 최근 심화된 교역조건 악화로 체감경기는 더 나쁘게 느껴질 것이다.

물론 고유가와 북핵 문제 두 가지가 함께 하반기까지 지속되면 성장률은 1%대까지도 추락할 수 있다. 이 경우엔 실물경제의 악화와 더불어 물가가 크게 오르는 스태그플레이션이 예상된다.

따라서 향후 경기 급냉 가능성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 재정의 상반기 조기집행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이러한 소극적 경기방어책만으로는 안되며, 더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경기가 나빠질수록 기업활동을 저하시키는 각종 요인들이 고용창출이나 투자증대에 미치는 악영향은 더 심각하게 나타난다.

그런 관점에서 현재 논의되고 있는 법인세 인하는 최근 경기상황을 고려해 보거나 중장기적인 기업경영 여건 개선 관점에서 바람직하다. 물론 세수 감소를 보전할 방안을 병행해야 할 것이다.

경기 개선 기미가 없으면 더욱 적극적으로 금리 인하와 재정적자를 감수하는 지출 확대까지 고려해야 한다. 현 상황에서 이런 조치는 성장률을 제고하려는 의도보다 실물경제의 위험한 추락을 막자는 관점에서 해석돼야 한다.

끝으로 이라크 사태가 해소되더라도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을 북핵 문제의 경제적 비용에 대한 냉정한 이해가 요구된다. 북한의 행동과 관련해 해외에선 한국의 기본적 안전보장에 대한 불안이 높아지고 있다.

'위험'한 나라에 어떤 외국기업이 금융.물류.IT 지역거점 본부를 설치하고 직접투자를 하겠는가. 명료한 해결방안의 경제적 가치가 매우 크다 하겠다.

허찬국 한국경제연구원 거시경제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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