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후 타결의「여진」|여야협상…그 뒤의 사연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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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15명의 여야당직자회담이 협상을 벌이고 있는 동안 2백 명의 국회의원은 개점 휴업한 국회 주변을 서성댔다.
그러나 열쇠는 막후의 막후에서 마련됐다. 박일 의원을 중개인으로 한 김 총리와 유진산 당수간의 절충이 그것이다.
그래서 15인간부들도 멋 적게 됐고 그중 몇 사람은 아직도 개운치 않은 기분을 못 씻고 있다. 이른바 협상 후유증이라고 할지-.
더우기 당사자인 김↔박↔유 3인중 김 총리와 박일 의원은 일체 입을 다물고 있다. 오직 유 당수가 공개한 것만이 알려진 절충의 전부다. 김·박 두 사람이 경위를 얘기한다면 내용이 많이 다를지 모른다고 짐작하는 사람도 있으나 두 사람이 쉽게 입을 열 것 같지는 않다.
신민당의 고흥문·김영삼·김원만·이중재 의원 등이 중심이 된 비주류는 협상이 유진산 당총재와 김종필 국무총리간에 타결 데에 몇 가지 문제점을 제기하고 있다.
첫째는 유 총재가 하필이면 신민당의 사퇴권고 대상인 김 총리와 막후절충을 벌인 점, 둘째는 신민당소속 박일 의원이 중간역할을 한 점, 세 째로 막후절충의 제의가 유 총재의 주장처럼 과연 김 총리 쪽 이었는가에 회의를 나타낸 것.
사퇴권고 대상을 상대한 절충에 대해 유 총재는 별다른 해명이 없었으나 유 총재의 오른팔이라 할 수 있는 이민우 원내총무의 설명은 이렇다.
『여야당직자 회담에서 협상이 어려워졌을 때 나는 신민당 10인 위원들에게 친분을 찾아 여당 쪽과 개별접촉을 벌이자고 제안했다.

<김 총리·박 의원 학생 때 구연>
유 총재가 김 총리와 간접대화를 한 것은 이 같은 당내의 묵시적 양해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보이며 상대가 인책을 요구한 당사자라 해서 대화를 안 할 이유는 없다.』
박일 의원이 중재를 맡게된 점을 두고도 얘기가 많다.
박 의원 자신은『국회를 정상화해야겠다는 생각에서 나섰다』고 했지만 그가 김 총리와 어디에서 어떻게 만나 무슨 얘기가 오간 끝에「메신저」가 됐는지를 말하지 않고 있다. 박 의원은 지금 그가 유 김 막후 절충에 관해 입을 열면 잘된 국회정상화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면서 언젠가는 자세한 내막이 알려질 것이라 말했다.
유 총재는 김 총리와의 연락을 박 의원에게 맡긴데 대해 박 의원이 평소 김 총리와 자주 내왕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김 총리는 박 의원과 대학시절부터 아는 사이.
김 총리가 서울사대에 다닐 때 박 의원은 연세대 학생이었는데 국대안을 둘러싸고「학통」과 싸울 때 알게됐고 박 의원이 8대 의원이 된 이래 구연으로 박 의원이 자주 총리와 만났다는 얘기다.

<유 총재 책임 묻겠다고 별러>
유·김 막후협상을 고흥문 부총재가 사전에 알고있었는지 그리고 김 총리에게 보낸 협상 안이 과연 유 총재가 말한 방식으로 마련됐던 것인가의 문제도 당내에서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고 부총재는 채문식 대변인이 찾아와 잠깐 말만 전해들었을 뿐 협상 안을 써준 적이 없다고 펄쩍뛰고『유 총재가 나를 끌고 들어가려고 한다』고 야단이다.
이에 대해 유 총재측근에선 유 총재의 결단은 결국 고 부총재의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어쨌든 이번 여야 협상결과와 그 내용에 대해서는 비주류는 물론 주류 측에서조차 불만이 있다.
협상 주역이었던 신도환 사무총장은 내각 총 사퇴권고안의 「법사위통과보장」을 신민당 10인위서 거부하고 난 다음 여당 측 협상대상자로부터『다른데서 딴 얘기를 하고 있는데 당신 얘기만 듣다 큰일 날 뻔했다』고 일러주어 무슨 낌새를 느꼈으나 유·김 접촉 내용은 의원총회에서 유 총재 얘기를 듣고 처음 알았다는 것이고 이철승 부의장도 여당 측 사람을 통해 유·김 접촉사실을 들었을 만큼 완전히 소외당해 유 총재에 대해 섭섭히 여기고 있다.
특히 비주류는 막후절충 경위를 유진산 총재와 연결시켜 생각한다. 그래서 비주류는 앞으로 당무회의나 의원 총회에서 이 문제를 제기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으며 새해 예산안의 국회 본회의통과에 즈음하여 채택할 대 정부 건의안의 처리가 끝난 뒤 당의 지도층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고 고흥문 부총재 같은 이는 말하고 있다.
비주류는 유 총재가 이끄는 방식으로는 당의 앞날이 어둡다고 심각한 얼굴들. 이로 미뤄 신민당은 협상 후유증을 겪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당권 도전으론 발전 안될 듯>
그러나 비주류의 의견이 책임한계 등에 아직은 통일되지 않은 데다 널리 조직화되지 않아 협상 결과에 대한 불만이 당권 도전으로까지 진전될지는 의문이다.

<여당 간부엔 16일에 알려와>
여당 간부들이 유·김 교섭을 안 것은 15인 회담이 일단 결렬된 지 이틀후인 지난16일. 이병희·구태회 두 무임소장관이 지난 16일 국회의장실에서 여당 간부들에게 유·김 접촉을 알려왔던 것.
이때만 해도 여당 측 협상대표들은 신민당 측의 진의를 몰라 이날 저녁 열린 공화·신민 양당의 사무총장·원내총무간의 4자 회담을 통해 내각사퇴 권고안을「법사위 통과 후 본회의 유보」라는 마지막 타협안을 제시해 신민당 측의 양해를 얻었었다.
그러나 막후에서 진행된 유 총재와 김 총리간의 절충에서 내각사퇴 권고안의「법사위 유보·대 정부 건의안 채택」이라는 선으로 후퇴 조정돼 여당 측 협상대표들은 뒷머리를 맞은 격이 된 것.
여당측 간부들은 협상결과에 대해 되도록 아무 말도 하지 않으려 하고 있는데 한 간부는 이번 협상의 타결방법에 대해 고위층에 불평을 했다는 후문이다.
이와 함께 같은 여당 세력인 공화당과 유정회 간에도 부조화가 빚어졌다.

<협상 과정서 공화·유정 서먹>
이번 여야 협상은 공화당 측이 주도했고 유정회 측은 뒤로 처졌기 때문. 유정회 측이 전면에 나서지 못한 것은 당초 15인 회의를 공화당 측이 제의했을 때 신민당 쪽에서 유정회는 제외할 것을 주장한데도 원인이 있지만 그후에도 줄곧 후선 이었다.
여야 협상이 부진하자 유정회 측에서는『공화당은 신민당에 끌려만 다니느냐』『신민당이 불참하더라도 예산심의를 해야할 것이 아닌가』고 공화당 측을 채찍질했었다.
협상이 공화·신민의 양폐 활동으로 추진된 것은 유 총재의 박대통령 면담 거론에서도 확연하다.
지난16일 공화·신민 양당의 사무총장·총무4자 회담에서 신민당 측은 공동성명 속에 시국문제를 포함하자고 했었고 여당은 합의방안에 포함시키자 고해 옥신각신 끝에 시국문제는 다른 차원에서 다루기로 절충을 보았는데 김용태 공화당총무와 신도환 신민당사무총장은 빠른 시일 안에 박·유 면담을 추진하기로 따로 의견을 모았다는 것.
이 계획도 결국 유 당수·김 총리절충으로 무산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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