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공관계 진전과 한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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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미·중공간의 국교정상화를 촉진하기 위해 마련된 이번 북경회담은 그 정치적 정지작업을 벌이기 위한 광범위한 토론·협상이 있었던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회담 후 발표된 「커뮤니케」에 의하면 미·중공 양국은 세계에서 지배권을 확립하려는 여하한 국가 또는 집단의 노력에도 반대한다고 선언하고 워싱턴과 북경에 설치된 쌍방 연락사무소의 점진적 승격, 대만에 대한 중공의 영토권 인정 등을 재확인했다.
이번 북경회담에서 미국 측은 대 중공관계 정상화를 촉진하기 위해 한국과 대만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의 추가 감축문제를 비롯한 모종의 양보를 했을지 모른다는 설이 파다했으나 공동 「커뮤니케」에서는 전혀 언급이 없는 것이 주목할 만하다.
그러나 북경회담에서 한국문제가 거론되었으리라는 점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이것은 주은래가 기자들에게 확인을 주고 있을 뿐 아니라 중공은 미국과 국교를 정상화하는 전제조건으로서 처음부터 시종일관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해 왔었다는 사실, 그리고 금차 유엔총회에서 한국문제 해결을 둘러싸고 미·중공이 커다란 이견을 드러내고 있는 것만 보아도 가히 알 수 있다.
몇 해전 주은래가 주장한 것처럼 지금 한반도는 『전쟁도 평화도 아닌 상태』에 놓여있다. 전쟁이 아니라는 것은 휴전협정이 그 대강에서 지켜져 큰 무력충돌이 없기 때문이요, 평화가 아니라는 것은 교전 쌍방간에 아직도 평화협정이 맺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일종의 기이한 상태에서 벗어나 한반도의 평화를 확고부동한 것으로 굳히기 위해서는 우선 남한을 지지하고 있는 미국과, 북한의 입장을 지지하고 있는 중공 사이에 어떤 정치적인 타결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 정치적인 타결은 남북한간의 평화공존을 성숙시키되, 한국의 안전보장을 위태롭게 하지 않는 선에서 모색되어야 한다.
북한당국은 평화조약 체결의 전제로서 항상 외군 철수를 내세워 왔다. 우리는 물론, 평화의 고정화를 찬성한다. 그러나 우리가 원하는 평화조약은 한국의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의 안전을 충분히 보장하면서 남북한이 우선은 평화공존하고 나아가서는 평화통일에 접근할 수 있는 기반을 성숙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평화를 빙자하여 한국방위의 역량을 조금이라도 약화시킬지도 모르는 일체의 책동을 단호히 배격한다. 평화조약 체결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공산주의자로 하여금 조약을 지키지 않을 수 없게 하는 조건, 예컨대 4강간의 평화조약 이행보장 등을 갖추어 놓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키신저」·주은래 회담에서 한국문제에 관해 어느 정도의 합의가 성립되었는지 우리는 모른다. 그러나 한국이나, 남북관계, 또는 통일문제에 대해서는 근본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합의라면 우선 한국 자신이 받아들일 수 있는 성질의 것이라야 한다.
키신저 장관은 16일 내한하여 박 대통령과 회담키로 되어있다. 그 방한은 북경회담에서 한국문제에 관한 토의사항을 알리는데 목적이 있으리라고 한다.
그러나 박-「키신저」 회담은 한국문제를 다룸에 있어 서로 기탄 없이 의견을 교환함으로써 『양측이 함께 만족할 수 있는 공동전략』을 세우는데 중점을 두어야지, 이미 북경에서 결정된 사항을 일방적으로 통고하는 회담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은 다시 말할 나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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