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최희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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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높은 열에 떠서 멍하니 천장을 보며 누워있는 동생의 모습을 애써 지우며 국립의료원을 나선다.
인간은 슬프기 위해서 태어났다는 어느 시인의 말을 되뇌어 보면서- 좁은 입시 문을 뚫기 위해서, 체력장은 특급을 받고 필기 시험도 찰 치기 위해서 새벽부터 밤늦게 까지 입안에 백태가 끼도록 피로하고, 하지만 입맛이 없어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해 영양 실조가 되고 드디어는 합격 후 6개월만에 생긴 늑막염이라는 병.
「이 학생의 변은 누나의 열성 때문에 생긴 겁니다』하던 옆 환자의 말이 자꾸만 뇌리에 박혀 오고, 새벽 1시까지 붙들고 앉아서 공부시키던 나 자신의 모습이 선연히 떠오른다. 「버스」 정류장에서 창피한 줄도 모르고 눈물이 주르르 흐른다.
푸른색 잠옷을 입고 하얀 사각의 벽 속에 갇힌 듯이 누워있던 모습. 그 곁에 멍청히 서있던 부모님들.
지금의 실망은 큰 사치일지도 모른다. 지금은 환자·의사·가족들이 온힘을 합해 병을 물리치기에 노력해야만 한다. 그러면 하늘도 스스로 돕는 인간을 도와주시리라. 달리는 「버스」 속에서 지나치는 거리 풍경도 희끄무레 어수선스럽다. 나는 모든 것을 잊고 다만 앞을 향한 기구에 온 마음을 모온다.
「신이여, 여기 스스로 노력한 인간의 행복을 다시 얻게 하여 추십시오.」 <최희숙(서울 서대문구 홍제동 273의 40)<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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