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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단 조제약 사고 그 맹점과 대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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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최근 약국에서 조제한 감기 약을 먹고 절명한 사건이 부산과 대전에서 잇달아 발생,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도대체 이 같은 충격적인 사건의 원인과 사회적 배경은 무엇인지, 그리고 그 대책이 어떤 것인지를 특별좌담회를 통해 살펴보기로 한다. <편집자주>
사회=최근 잇달아 발생한 조제약 사고는 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준 것 같습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애당초 포장이 잘못된 쥐약원료를 약사가 감기 약으로 잘못 조제한 사실이 밝혀지긴 했습니다만 어떻든 이번 사고는 약사 계가 결국 한번쯤 검토해야할 문제점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우선 잇단 조제약 사건의 문제점에 대해서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강=이번 사고는 유통과정에서 의약품 관리의 허점을 드러낸 대표적인 예라고 보겠는데요. 특히 약품원료를 외국에서 들여와 전국의 도매상과 약국에 공급하는 소분업자들이 관리를 제대로 못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따라서 약품원료를 나누어 포장하는 과정에서 「라벨」을 잘못 붙일 가능성은 충분히 있는 셈이지요.
이=결국 약품관리가 허술하다는 것이지요.
한=현재 법규상으로는 소분업소 뿐만 아니라 의약품을 다루는 곳이라면 어느 곳에나 약사를 두도록 되어있습니다만 실제로 상주하면서 감독·관리하는 약사가 드문 것으로 알려지고 있어 오래 전부터 문제가 되어왔습니다. 들리는 바로는 의약품에 대해서 조금도 알지 못하는 소녀들을 고용, 소분 작업을 시키고 있다는 것입니다.
강=소분한 후에 「라벨」에 반드시 관리약사의 도장을 찍도록 되어있지요. 그러나 실제로 소분업자들이 이러한 규정을 잘 지키고 있는지는 심히 의심스럽습니다.
이=의사의 입장으로 볼 때 포장이 잘못된 약이 그대로 유통된다면 무서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큰 병원에 잘못 포장된 극약이 공급되는 경우 인명피해는 엄청나게 확대될 것입니다.
사실 우리들 의사는 처방한대로 약국에서 나왔다고 믿을 수밖에 없지 않아요? 그것을 일일이 어떻게 「체크」할 수 있겠습니까? 이러한 문제는 법 이전의 양심이나 윤리의 문제라고 생각됩니다.
한=그렇습니다. 의약품은 귀중한 인명에 관계되는 것이므로 그 관리에 있어서 법률적으로 강화시키고 동시에 경영자 스스로가 사명감을 발휘하도록 정신자세를 가다듬도록 해야겠지요.
사회=빈번한 약사의 조제약사고는 약사 양산에 따른 자질저하와 우리 나라 약대교육의 맹점을 반영한 현상이라는 풀이도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한=현재 우리 나라 약대교육이 잘못되고 있다고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다만 약사가 사람의 귀중한 생명을 다루는 직업이라는 점에서 좀더 적극적인 실습을 시켜야할 것입니다.
외국의 경우를 보더라도 약대교육연한을 현행 4년에서 5년으로 연장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하겠습니다. 미국은 물론 「필리핀」이나 「싱가포르」에서도 5년 동안의 약대교육을 받아야 약사가 되도록 되어 있으니까요.
강=약국을 개업하기 전에 약을 다루고 조제하는 실습을 철저히 받도록 하는 법적 조치는 꼭 필요하다고 봅니다. 아무런 경험도 없이 대학을 졸업, 약사면허증을 얻은 후 곧바로 개업하는 현 실정에서 조제약 사고가 안 일어난다면 오히려 이상하지 않아요?
외국의 경우 약사면허증을 얻기 전에 병원·보건소·위생시험소·제약소 등에서 실제적인 경험을 쌓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의사들의 경우도 실제 임상경험이 문제시되고 있는데요. 약사들도 실제로 약을 다루고 조제하는 훈련을 철저히 받아야겠지요.
사회=의사의 처방에 따르지 않는 약사의 임의조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최근에는 산탄식 조제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입니다만 실제로 약사들이 조제약의 효력을 높이기 위해서 이 약 저 약 섞어 넣어 지나칠 정도로 많은 분량의 약을 조제하는 경향입니다.
약사들의 이 같은 산탄식 조제방법이 흔한 부작용의 원인이 되지 않는지요.
한=약국에서 지어온 약봉지가 자꾸 무거워지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병이 빨리 낫고 싶어하는 환자들의 무리한 요구를 만족시켜 주기 위해서 불가피하게 약을 많이 쓰기도 하겠지만 약 한 두 봉지로 병을 낫게 해주려는 약사들의 과욕도 문제입니다.
이=의사이건 약사이건 약을 많이 쓴다면 엉터리라고 하지 않습니까? 어떻게 해서든 빨리 병을 낫게 해서 명의나 명약사라는 말을 듣고 싶어 불필요한 약을 이것저것 몽땅 처방·조제해주는 예를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장사꾼이라는 오명을 씻을 길이 없지요. 이러한 문제는 어디까지나 윤리적인 문제로 의사나 약사의 양식에 맡길 수밖에 없겠습니다.
강=약사들의 산탄식 조제경향에는 국민들에게도 일단의 책임이 있다고 봅니다. 병에 걸리는 경우 지나칠 정도로 속효를 바라는 것은 삼가야겠지요.
사회=약사가 마치 의사처럼 환자의 상태를 물어보고 처방·조제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한=원칙적으로 진단 처방 투약은 의사가 하고 조제는 의사의 처방에 따라 조제만 하도록 되어있지요. 그러나 의약분업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우리 나라의 실정으로 보아 이러한 원칙을 적용하기는 어렵다고 보겠습니다.
다만 약사의 조제한계에 대해서는 약사들 스스로가 반성해야겠지요.
강=처방·조제를 요구하는 환자나 약을 지어주는 약사나 모두 잘못입니다.
이=환자들이 드나들기에는 병원문턱이 높은데도 잘못은 있겠지요.
사회=결국 잇단 약화를 막기 위해서는 의약분업이 이루어져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 실정으로 보아 의약분업은 어느 정도 가능하다고 보십니까?
한=사회보장제도가 실시되면 의약분업은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젠 우리도 대도시에서부터라도 단계적으로 실시하는 방안이 검토되어야겠지요.
이=현실적으로 항생제를 비롯한 몇 가지 약에 대해서는 의약분업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또 의료보험을 실시하기 쉬운 대기업별로도 가능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약사회가 앞서서 의사의 처방에 따라서만 조제하는 「모델」약국을 시험적으로 개설해보는 것도 좋겠지요.
사회=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좌담회>참석자
강동태(서울의대부속병원약국장·약학박사)
이문호(서울대의대내과교수·의박)
한덕용(중앙대약대학장·약학박사)(가나다순)
때=1973년10월16일
곳=본사회의실
사회=김영치(본사과학부차장)
기록=이운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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