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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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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인도는 사람 수만큼이나 언어의 수도 많다는 말이 있다. 물론 과장이다. 하지만 언어의 종류가 얼마나 많고 또 복잡한지를 짐작할 수 있다.
1950년1월25일에 발효한 인도의 헌법을 보면 15년 동안 영어와 「힌두」어를 공용어로 함께 쓰도록 했다. 그 다음부터는 오로지 「힌두」어만을 쓰기로 규정했다. 그러나 15년 후인 1965년1월26일은 「힌두」어의 날이 아니고 「데모」의 날이었다. 그것도 평온한 「데모」가 아니고 살인·분신 자살·방화 등이 잇단 하나의 폭동이었다. 영어를 쓰던 사람들이 들고 일어난 것이다.
인도에서 일반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말은 2백50가지나 된다.
여기에 작은 지방어들까지 곁들이면 그 종류는 8백45가지로 늘어난다. 언어의 통일은 생각조차 할 수 없을 것 갈다.
이와는 반대로 죽은 「히브리」어를 다시 살려놓은 이야기도 있다. 「이스라엘」의 경우이다.
「히브리」어는 3천3백여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의 불운과 함께 그 말도 차차 생명력을 잃어버렸다. 기원전 70년, 「로마」 제국에 의해 유대 민족은 온통 외국으로 추방되었다. 이때부터 「히브리」어는 빚을 잃어갔다. 겨우 성경에나 남아 있는 언어로 전락한 것이다.
그러나 「엘러저·벤 예후다」 (Elizer Ben-Yehuda 1858∼1922)라는 사람은 『국어를 살리는 길이 나라를 세우는 길』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는 무엇보다 먼저 사전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대로 했다. 「이스라엘」이 건국되면서 이런 운동은 국책이 되었다. 2천년 동안이나 자기 말 (「히브리」어) 을 잃고 살던 사람들에게 「죽은 말」을 쓰게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어학자·일선 교사들은 「언어 심의회」를 만들고 문법과 맞춤법을 정리했다. 한편 학자와 시인들이 나서서 「히브리」어 사전을 편찬해 냈다. 또 군대는 그들대로 모든 군사용어를 「히브리」어 화했다.
새말을 채택할 때는 절대로 무리하지 않았다. 가령 「성냥」을 뜻하는 낱말이 일곱 가지나 있었지만, 「유황」의 Gafrit에서 본떠 「가프루」 (Gafru)라고 했다. 또 차고를 「무사치」 (Musach)라고 하는데, 이 말은 「솔로몬」왕의 궁전 이름에서 비롯되었다.
「이스라엘」「히브리어」를 국어로 살려 놓는데는 강렬한 민족적 자각이 없었던들 불가능했을 것이다. 물론 성경이라는 종교적 일관성도 있다. 게다가 국가의 열의가 대단했다.
오늘, 우리의 한글은 어떤가? 단일 국어로서의 강점·장점을 다 갖고 있지만, 그 속화는 말이 아닌 것 같다. 아름다운 우리의 말들은 서서히 자취를 감추고, 사납고 비정적이며 설득력이 없는 돌덩이 같은 말들만 행세를 한다. 언어 정책의 혼미가 빚은 현실이다. 좋은 말도 제대로 쓰지 못하는 창피한 민족이 되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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