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국회의 개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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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새해 예산안을 비롯해 국민출자기금법안 등 국민의 생활경제와 깊은 관계가 있는 법안, 그리고 내외의 관심을 모으고있는 김대중씨 사건 등을 의제로 국회가 개회됐다.
9대 국회는 앞서 세 번 집회됐지만, 그것은 개원과 6·23 선언에 따른 국회의 입장을 밝히기 위해 열렸던 것이기 때문에 네 번째 집회인 이번88회 정기국회는 사실상 「10월 유신」이후의 첫 국회나 다름없다.
국회는 국정토론의 장. 더욱이 국회의 가장 중요한 기능인 예산심의를 하는 이번 국회는 성실한 토론의 장이 되기를 기대한다. 본래 조세부담의 적정 선을 보장하기 위해 생긴 국회의 기원을 들출 필요도 없이 성실한 예산심의는 국회의 권능이자 또한 책무이기도 하다.
종전 같으면 정부 각부처가 예산액을 요구할 단계에서부터 그 사업계획이나 규모의 적정여부가 공개적으로 논의되었었다. 그러나 10·17이후, 낭비적인 논의의 지양을 위해 사전토의가 많이 억제되었다. 새해에는 국민이 모두 얼마만큼 세금을 부담해야하며, 또 그것이 어떻게 쓰여지는지, 정부예산안의 총 규모조차도 지금까지 정확히 알려지지 않고 있다.
그 내용은 예산안의 법정제출 시한인10월2일 까지는 소상히 밝혀지겠지만,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사전토의가 종전보다 충분치 않았던 사정으로 미루어 국회의 예산심의는 이전보다, 몇 배의 성실성이 요청되는 것이다.
국회에는 국정감사권이 없어졌다. 이 때문에 국회의 국정파악이나 비판에는 상당한 애로가 있을지 모르나 국회의원의 질문권·대 정부자료제출 요구권·결산심의권 등을 바탕으로 냉철한 현실감각과 과학적인 계수의 분석으로 예산심의에 임해주기 바라는 것이다.
국회는 개회벽두에 김대중씨 사건과 외교·경제·치안문제에 관해서도 대 정부질문을 벌이기로 일정을 짰다. 김대중씨 사건에 관해서는 국회 스스로가 진상을 규명할 입장에 있는 기관이 아니기 때문에, 별다른 기대를 걸 수는 없으나 국회는 국민대표의 기능을 충분히 살려 국정전반에 걸쳐 진정한 국민여론의 소재를 폭넓게 투영시켜줄 것을 바란다.
작금 우리 정치에서는 정당의 여야관념이 많이 바뀌었다. 여야당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다수당·소수당의 표현이 좀더 적합한 것 같다.
원내의 네 교섭단체 중 신민당만이 야당이다. 신민당은 몇 개의 세법개정안과 국회법개정안 등을 포함한 수 개의 정치적법 안을 준비하고 있는가하면 여당 측에선 이를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미리 못박고 있다.
종전에 야당은 국정감사진행과 예산심의를 정치입법관철의 협상물로 삼아왔었는데 이제는 신민당 참여 없이 모든 의안처리가 가능하기 때문에 야당으로서는 대여관계에 적지 않은 어려움을 안고있는 셈이다.
그러니 만큼 여당의 대야자세에도 얼마간 변화가 있어야 될 것으로 생각된다. 정치입법과 예산심의의 협상은 원칙적으로 정도가 아니다. 그러나 그 같은 편의적 풍토가 바뀌어진 이 마당에 있어서는, 여당스스로가 야당에 대한 관념을 한 걸음 물러서 가져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이번 예산국회가 성실한 토의와 폭 있는 국민대표기구로서의 기능을 시범해 줄 것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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