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전의 행방|그 개혁안을 보고|이경성<홍대 박물관장·미술평론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문공부는 내년부터 국전제도를 크게 개편하여 새로운 운영을 모색한다고 한다. 그 안에 의하면 동양화·서양화·조각에 걸친 구상계열만을 국전 테두리에 남겨 놓고 역시 동양화·서양화·조각에 걸친 비구상계열은 따로 현대미술국전으로 독립시킨다. 서예도 독립시키고 공예는 그전에 독립 분리한 건축사진전에 합류해서 시행한다고 한다.
결국 제1부에서 제6부까지 있었던 옛 국전은 구상계 만을 정통으로 삼고, 그밖에「현대미술」「서예」「건축사진공예」등의 넷으로 분리되는 것이다.
이 국전의 세분화는 국전 본래의 기능에서 볼 때 과연 잘된 것인지, 그렇지 않으면 못된 것인지 간에 국전 창설의 목적은 그의 규정 제2조에 있듯이 우리 나라 미술의 향상 발전에 있다. 그것은 어느 유파를 조장하거나 경향화 하는 것이 아니고 세계 속의 한국, 그 속에서도 한국미술의 정상적인 발전을 도모하는데 있다. 1949년 창설이래 어느덧 22회로 접어들어 명실공히 한국현대미술의 주류를 형성하였다.
그간 심사위원 선정·시상 등을 중심하여 많은 시비도 있었으나 그런 대로 시대에 적응하여 성장해왔다. 국전이 20회 되던 해, 나는「성년국전」을 축복하면서 그의 발전적 해체만이 우리 나라 미술행정의 정상화를 초래할 수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것은 우리 나라의 미술행정이라는 차원에서 국립현대미술관을 중심으로 다양한 미술정책을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단순한 부정이 아니고 보다 큰 긍정을 위한 부정이었던 것이며 개혁을 꾀하는 차제라면 과단성을 보임직한 때라고 생각한다.
현대미술관이 없었을 때에는 국전은 국가가 주재하는 유일한 미술정책으로서 의미가 있었다. 그러나 현대미술관이 존재하는 마당에 국전은 국가적 미술행사의 하나로 축소돼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현대미술관은 그전에 국전이 담당하였던 모든 기능을 흡수하고, 더 나아가 미술의 국제교류 등 적극적인 미술행정을 추진해야 된다는 것이다.
국전에 소요되는 예산을 현대미술관에다 주면 그 곳에서 국전에 못지 않은 많은 미술행사가 개최될 것이다.
모든 기성작가를 위한 초대전이 개최되고 신인발굴을 위한 신인전이 마련될 것이다. 그것은 회화·조각·공예·서예·건축·사진 등 부문별로도 개최할 수 있고, 좋은 작가에게는 지금의 국전이 주는 것과 같은 상을 줄 수도 있다.
즉 국가가 시행하는 단순한 전람회가 아니고 대한민국의 미술을 고루 발전시킬 수 있는 다각적인 미술정책으로서의 행정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래야지만 우리 나라의 미술행정도 본궤도에 올라서는 것이다.
문공부가 생각하는 개혁안도 크게는 이 미술정책과 다를 바 없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미술행정의 주체가 현대미술관이 아니라 문공부 예술국이고, 국전이라는 이름을 어느 한 부문에다 고식적으로 존속시키자는 것뿐이다.
개혁안의 골자를 보면 구상계 회화·조각만이 국전에 남아있고 다른 것들은 모두 독립시킨다는 의미가 된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구상계 국전이 종가이고, 다른 것은 분가라는 뜻이 된다.
「프랑스」의「르·살롱」처럼 전통만을 자랑하고 오늘의 창조에서 뒤떨어진 역사적 존재가 된다면 몰라도 진정한 예술창조를 위한 기관이 된다면 그런 것들은 문제가 안된다..
오히려 종가라고 격과 실리만을 자랑하고 있다가 역사에서 낙후되면 그 말로는 비참해 질 것이다.
어떻든 차선책으로서의 국전개혁은 여러 가지 문젯점을 내포하고 있으나 구상과 현대미술을 별도로 한 점 국전시비의 촛점이 흐려질 것이고, 서예를 독립시킨 점 역시 말썽의 일부를 없앤 셈이다.
그러나 공예를 건축사진부로 합류시킨 처사는 상공미전으로 합류시킨 것보다 못하다고 본다. 그렇다면 차라리 공예를 하나로 묶고 사진을 따로 독립시키는 것이 무리가 없다.
끝으로 국전의 명칭인데 대한민국상공부 미술전람회가 엄연히 정부 주최전인 데도 불구하고 주최자의 이름을 따서 상공미전이라고 부르듯이 문공부주최의 모든 미전도 문공전 정도로 부르면 어떨는지. 예를 들면 문공미술전(구상계열), 문공현대미전(비구상), 문공 서예전, 문공건축·공예전, 문공 사진전 등으로 말이다.
어떻든 문공부는 구상이건, 비구상이건, 서예 건, 건축·공동 건, 사진이건 간에 그것이 우리 나라의 미술문화를 창조하는 같은 조형예술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