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경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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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지금도 한강변의 양화진 옛터에는 한말 때부터 외인 기지가 그대로 남아 있다.
그 속에는 한「이탈리아」인의 무덤도 있다. 그가 한말에 서울에 왔는지, 어떻게 왔는지 아무도 모른다. 몇 십 년을 두고 그 묘를 찾는 유족이 있었다는 소리도 못 들었다.
2차 대전의 격전지였던「몬테카시노」에는 장대한 군인 묘지가 있다. 연합군이 만든 것이다. 여기에는 영군 만이 아니라 독일의 전몰 병사들까지도 나란히 묻혀 있다.
동양인들은 다르다. 어디에서 죽거나 반드시 고향에 묻히기를 바란다. 대만에 건너가서 죽은 중국인들의 유골도 자손들이 고이 간직하고 있다. 언젠가 중국 본토에 있는 고향 땅에 묻히기를 바라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데 동·서양의 인생관의 큰 차이가 있다고 하겠다. 서양에서는 한 인간이 어디서 어떤 활동을 하다 죽었는가를 중요시한다.
동양인은 어디서 태어났는가를 보다 중요시한다. 그만큼 고향 지향적이다. 이를테면 집단 귀속 성이 강하다고 할까. 서양에서는 가족의 유대는 인간의 성장과 함께 무너져 나간다. 어디서 무엇을 하다 어떻게 죽든 그것은 그 개인에 한정 된 얘기에 지나지 않는다.
동양에서는 가족의 유대는 결코 무너뜨릴 수 없는 것으로 되어 있다. 아무리 멀리 떨어져 살아도 고향의 품으로 돌아와서 묻힌다는 것은, 그러니까 동양인에게 있어서는 최대의 위안이 된다.
이리하여 동양 사람들은 고향을 멀리하는 것을 가장 서러워한다.「이민」이라는 말이 묘한 애상의 여운을 풍기는 것도 이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고향 지향성은 이제는 많이 누그러졌다. 시골 사람이 서울에 와서 오래 살면 시골을 잊게 된다. 서울 사람이 해외에 오래 나가 있으면 서울을 잊는다.
어디다가 뼈를 묻힌다 해도 그리 상관하지는 않는다. 이런 경향이 옳다 그르다는 가치 판단은 둘째 문제일 것이다. 문제는 어디에서 태어났느냐는 것보다 어디서 무엇을 하다 죽었느냐는 것에 더 큰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이런 사실은 아랑곳도 없이 추석 경기는 요새도 한창이라 한다. 기이한 생각이 든다.
옛 사람들이 추석을 설날과 나란히 2대 명절로 여긴 데는 충분한 까닭이 있었다.
추석은 추수 때이다. 여름 내내 자연과 싸워 가며 가꾼 논·밭에서 열매가 맺고 그것을 뭣 보다도 먼저 조상에게 감사드리겠다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시골 사람보다는 서울 사람이 더 많다. 추석도 예만큼 그렇게 소중하게 여기지를 않는다. 가족의 유대도 애틋하게 여기지를 않는다. 그런데도 마냥 추석 경기만이 부풀어 가고 있다. 매우 기묘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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