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자의 비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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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물자비축을 촉진하기 위해 정부는 조달기금법의 개정 등 비축제도의 개편을 검토하고 있으며, 또 한편 무역업계는 그들대로 물자차관의 확대 등 원자재 확보를 위한 장·단기대책을 정부에 건의했다.
주요물자 비축사업의 개편은 현재 정부 베이스에서 조달청이 전담하고 있는 비축사업의 적자처리를 보강해 주거나, 또는 기금을 민간에 융자 할 수 있도록 법개정을 단행하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정부 비축사업의 개편 문제는 올해 비축 사업 계획이 구매시기를 실기하여 당초 계획이 백지화되다시피 돼 있고, 비축자금은 사장 돼 있기 때문에 원인 규명과 함께 제도적 보완을 하려는 것으로 짐작된다.
당초 정부의 비축 사업 계획은 상반기 중에 전기동 2천t, 생고무 3천t, 우지 4천 1백 t, 펄프 1만t, 소금 5만 t, 금사 1천 6백t, 고철 10만t을 신규로 비축하고 우지와 펄프는 비축전량을, 고철은 5만t을 판매할 예정이었으나 전기동 1천 5백t과 국산 소금 일부만 구매가 진행되고 있을 뿐, 나머지 물자의 비축은 실현되지 못했었다.
그 원인은 국제적인 원자재 파동으로 가격상승과 구매난이 겹친데다가 제도상으로 비축사업 운영에 따른 적자예상 때문에 신축성이 당초부터 결여 됐었다는 점이 지적되고 있다.
본래 정부 비축 사업의 목적은 비성수기에 가격이 폭락하고 생산이 침체될 때 구매했다가 성수기에 가격이 급등하면 비축물자를 푸는 식의 가격평준화 중심으로 운영돼 왔기 때문에 올해처럼 계속적인 가격앙등 과정에서의 적응력은 미흡했던게 사실이다.
다시 말해서 지금까지의 비축 사업을 벌이던 여건과는 정반대의 현장이 나타났던 것이며 저가매입·고가판매의 가격평준화와는 달리 계속적인 가격앙등 추세에서 매입시기를 놓쳤던 것이다.
따라서 단순히 가격평준화에만 역점을 둔 비축제도에서 이제는 가격앙등과 원자재 난에 대비한 비축제도로 전환해야 할 시점에 도달한 것이다.
비 성수기의 잉여물자를 비축하는 체제가 아니라 부족 되는 물자를 정부가 직접 구매, 생사업체의 원자재 난을 도울 수 있는 체제로 정비돼야 할 입장이다.
그런데도 현실적인 여건의 변화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과거의 방식만을 고수, 비축제도가 원자재 난을 완화하는데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 채 백지화 돼 있다는 사실은 시급히 시정돼야 한다.
더구나 세제·금융면에서 민간의 비축제도가 미비한 상태에 있는 만큼 장기적인 측면에서의 대책뿐만 아니라 단기적인 대책도 서둘러 보환 돼야 할 시점에 서 있다는 점을 당국자들은 알아야 할 것이다.
한편 무역업계는 원자재 확보를 위한 장·단기 대책은 단기 대책으로 물자차관의 확대, 비축을 위한 금융 및 세제 지원의 정비를 제시했고, 장기대책으로는 전문기구 설치, 원자재 거래방식의 다양화 등을 건의하고 있다.
이 업계의 장·단기대책 가운데 특히 주목되는 사실은 물자차관의 확대이다.
물자차관의 확대는 물량 확보와 단기적인 수입외화 부담 완화에는 도움이 될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국제수지에 압박요인이 되는 것이고, 단기적으로는 수입 사이드에서 통화 인플레를 억제 할 수 있는 기능이 약화되는 것이다.
더구나 현재의 국제시장 환경이 현금구매도 어려운 상태에서 외상구매를 시도하는 결과이므로 구매 가격면에서 불리를 가져올 가능성이 많기 때문에 엄격한 선별을 요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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