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간의 경제 관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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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한·미 상공 장관회의의 폐막성명은 양국의 의견을 제출·발표하는 성질의 것으로 그쳤다.
한국 측이 고철을 위시한 주요자료의 금수가 국내경제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에 이의 특별배려를 요청했으나 덴트 상무는 귀임해서 재검토한다는 일반적인 사령을 표명했을 뿐이다. 덴트 상무는 기자회견에서 미국의 금수조치가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간접적으로 특별배려의 여지를 배제한 인상을 주고 있는 점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미국 측은 한국경제의 절실한 당면문제에 적극적으로 이해하려는 성의보다는 한·미국의 무역역조를 시정해야 할 것이라는 대목에 역점을 두고 한국의 대미 수입 제한 문제, 제작권 보호, 보험회사의 진출 등에 배려해 줄 것을 강조하였다.
따라서 한·미간의 경제관계는 대등한 거래 관계로서 상호양보가 없는 한 실질적인 문제해결이 이루어 질 수 없을 것이라는 입장을 미국은 은연중에 시사한 것이다.
그동안 원조중심에서 차관으로, 그리고 이제는 대등한 상거래 대상으로 전환되고 있는 한·미 경제관계로 보아서 우리가 미국에 특별배려를 개대하기는 어렵게 되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였다 하셨는데 그러한 추세가 이번 공동성명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한·미간경제협력의 이러한 추세를 일단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라면 우리의 대외거래정책이나 그와 관련되는 국내산업정책은 새로운 사태에 대응하여 적절히 조정되어야 할 것이다. 산업정책이 장기적인 안목을 결여했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가 자원 쇼크에서 벗어나기 힘들게 되었다는 점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자본이나 자재에 대한 특정국에의 집중적인 의존이 국내정책 집행의 자주성에 얼마나 큰 지장을 주고 있는가를 직시해서 앞으로 대처해야 할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구미자본 도입이 제약됨에 따라서 전적으로 일본자본에 의존하려 하고 있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또 다른 장래 문제를 제기케 한다는 점에서 신중히 다뤄야 할 것이다.·자본과 원자재 의존성이 궁극적으로 의존경제화를 촉진시켜 후일의 실리를 크게 제약한다는 일반원리를 결코 외면해서는 아니 되겠다.
다음으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사항은 변화하는 국제경제 동향에 따라서 개별국가간의 경제관계가 변질되어 갈수밖에 없다는 협조의 한계성이라 할 것이다. 자유무역과 세계 경제의 성장이라는 국제 경제상의 명분이 국제 경제질서의 교란과정에서 근린 궁핍화정책으로 표변되는 사실은 달러 파동 및 자원파동으로 우리가 구체적으로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국제적인 협조관계의 한계성을 항상 전제로 해서 배수진을 치고 국내경제정책을 다뤄나가는 신중성을 잃어서는 안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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