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간의 인간 자유 교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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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현재 「헬싱키」에서 진행되고 있는 35개국 구주 안보 협력 회의에서는 동·서간의 서로 다른 기본입장이 명백히 부각되었다. 「로저즈」 미 국무장관과 「흄」 영 외상은 5일 현재의 동·서 분단을 영구화하기 위한 공존보다는 현장 벽을 제거하는 자유 교류가 필요하다는 것을 역설했다. 이는 곧 독일을 포함한 모든 분단 국가의 분단 상태를 영구화하려는 소련 진영의 주장에 정면으로 응수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구주 안보 협력 회의에서의 동·서 대화의 쟁점은 그 동안 한반도에서 진행된 남북 대화에서 드러난 남북한의 상위한 기본 입장과도 비슷하다. 분단 국가의 통일 문제에 관한 공산 측의 기본 입장이 서방측과 다르다는 것은 「유럽」에 있어서나 한국의 경우에 있어서나 똑같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어 여기에 각별한 관심을 갖게된다.
세계 정세가 지난날의 냉전시대로부터 협상시대로 접어들면서 동·서간 긴장이 완화되고 평화 공존이 뿌리를 내리고 현상 고정화가 촉구되고 있다는 것은 그 동안의 추이에서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현상 고정화 원칙은 분단 국가에 관한 한 적용될 수 없는 성질의 것이다. 분단 국가의 현상 고정화 원칙은 그 분단을 영구화할 뿐만 아니라 갈라진 민족의 고통과 불행을 영적 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동·서의 긴장 완화는 분단 국가의 경우 그 고통과 불행을 덜어주며, 궁극적으로 민족의 동질성을 원상 회복하여 통일을 이룩하도록 그 여건을 성숙시켜 주는데 그 큰 의의가 있다. 구주 안보 협력 회의에서 서방측이 분단을 영구화하기 위한 공존보다 자산 교류를 주장하는 소이도 이러한데 있다.
분단의 고통을 덜고 궁극적으로 통일의 바탕을 이룩하기 위해 초보적으로 요청되는 것이 인간의 자유 교류이다. 특히 가족과 친척의 접촉과 재결합은 모든 것에 우선되는 것으로서 이것은 비록 이념과 체제가 상이하다 하더라도 쉽게 실현될 수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서방측은 구주 안보 협력 회의에서 인문의 자유 교류를 비롯해서 정보의 교류를 제의하고 있다.
이에 반해 소련이 새삼 현상 고정의 원칙을 내세우는 것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독일의 분단을 비롯해서 그밖에 그 세력 하에 넣은 동구권을 계속 확보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다. 소련이 자유 교류를 마다하는 것은 만일 그것이 실현될 때 철의 장막은 근저로부터 뒤흔들릴 염려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련이 진정으로 구주의 평화와 안정을 바란다면 서방측의 제의를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소련은 냉전시대를 보내면서 새로운 국제질서형성에 있어 분단국의 고통을 무엇보다 먼저 덜어주도록 성의를 다해야 할 것이다.
돌이켜 우리의 남북 대화를 볼 때 전술한 인간 교류 원칙 가운데서도 가장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이산가족을 찾아주기 위한 적십자 회담을 진행시키고 있다. 그 동안 적십자 회담에 있어서 우리측은 합의된 의제에 따라 제일 먼저 토의하기로 된 『주소와 생사를 알아내는 의제』를 놓고 가장 구체적인 것을 토의하려고 애써 왔으나 북한측은 그것을 고의적으로 지연시키고 있다.
남북조절위 회의에서도 우리측은 사회·문화·경제면의 교류를 제의했으나 북한측은 그것을 거부하고 있다. 구주 안보 협력 회의에서 소련이 독일의 분단을 영구화하며 상호 교류를 반대하고 있는 것이나 남북 대화에서 북한이 우리측의 제의를 거부하고 있는 것과는 일맥상통한 점이 있다. 여기 남북 대화는 물론 동·서 협상에 대한 우리의 국민적 인식의 핵심이 어디 있어야 하는가 하는 계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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