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동 산불] "잔불 위력 무시해 불난리 커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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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양양 지역의 산불이 확산되는 과정에서 소방 당국이 잔불에 대한 대처를 소홀히 해 화마(火魔)를 키웠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소방당국의 판단착오가 최고 초속 20m를 넘는 강풍과 이 지역에 내려진 건조주의보와 함께 천년고찰인 낙산사까지 태우는 최악의 사태로까지 몰고간 셈이다. 소방 당국은 5일 오전 화재 초기 단계에 잔불이 남아 있음에도 진화 완료를 확신했다. 소방방재청 재난종합상황실은 이날 오전 11시 " 초동 진화를 적극 실시해 오전 9시20분 큰불 진화를 완료했고 산불의 90%가 진화됐다"고 발표했다. 초동 진화가 완료됐다고 판단한 당국은 오전 10시30분 양양군에 나가 있던 헬기 중 일부를 고성 산불 현장으로 돌렸다. 지난 4일 밤 11시 53분 산불이 발생한 지 11시간 만에 불길을 잡았다고 생각한 것이다.


낮 12시에는 양양군에서 긴급 대피했던 주민들이 복귀하기 시작했다. 소방방재청이 '잔불을 정리하고 있다'며 언론에 상황을 알린 직후였다. 양양 일대 주민들은 "방송을 보고 산불이 완전히 잡힐 것으로 보고 안심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오후 3시 상황은 급반전됐다. 초동 진화가 끝났다고 판단한 산불이 강풍으로 재발화한 것이다. 고성 산불 지역으로 이동했던 헬기가 다시 돌아왔고, 오후 3시에는 낙산사가 불타는 상황에 이르렀다. 강원도 지역이 봄철에는 오후부터 바람이 거세진다는 사실을 간과, 잔불의 위력을 무시한 것이다.

오후 1시부터 초속 20m가 넘는 강풍이 불면서 남아 있던 불씨는 낙산사 쪽으로 날아들었고 계속 확산됐다. 소방인력과 장비부족도 대형 산불 진화에는 역부족이었다. 산에 숲이 우거지면서 일반적인 진화장비는 거의 산불 진화에 도움이 안돼 헬기가 유일한 진화장비로 쓰이고 있다. 이날 양양지역에는 초대형 헬기 2대 등 모두 20여 대의 헬기가 투입됐다. 한번에 실어나르는 물의 양은 초대형 헬기가 1만ℓ인 반면 중대형 헬기가 1000~3000ℓ정도다. 소방방재청 관계자는 "산불을 효과적으로 진압할 수 있는 초대형 헬기가 너무 부족하다"고 말했다.

양양=임장혁.정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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