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거운 책가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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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무거운 책가방이 지난해부터 심심지 않게 학교생활 개선 논의의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지난가을 1주일에 하루를 책가방 없이 등교하는 날로 정하여 아이들을 교실에서 해방시킨 몇몇 초등 학교의 실험은 학교와 일반 사회에서 커다란 환영과 좋은 호응을 얻은바 있었다고 이번에는 문교부가 다시 그 책가방의 무게를 줄이라는 개선 안을 전국 각급 학교에 권장, 지시했다.
당국에서 그 동안 자세히도 조사한 통계에 의하면 우리 나라에서는 국민학교에서 고등학교에 이르기까지 대체로 책가방이 너무 무겁다는 결론이 나왔다고 한다. 요컨대 책가방의 무게가 몸무게의 20%를 넘는 경우가 많으며 학교에 들고 가는 지참 물의 가짓수는 12종 내지 많으면 18종에 이르고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무거운 책가방이 학생들의 신체 발달과 정서 교육에 지장을 준다는데 서 책가방의 시비가 되고 있다.
책가방의 무게가 지식의 무게와 정비례할 것이 아님은 물론이다. 뿐만 아니라 학력의 향상이란 신체와는 관계없이 두뇌만 좋게 하는 것이라는 생각도 당치않다는 것이 밝혀지고 있다.
학력「테스트」의 성적과 신장과의 사이에는 높은 상관 관계가 있다는 것이 많은 조사에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머리를 좋게 한다는 것이 몸을 튼튼히 한다는 것과 떼어서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가 된다. 그런 점으로 보아 책가방의 무게가 신체 발달에 장애를 준다면 시정되어야 한다.
한편 문교부에서는 책가방 무게를 줄이기 위해서 체육복·청소복 등을 학교에 보관할 수 있도록 교실에 사물함을 설치하고 사전과 참고서 등을 비치하는 학급문고를 두도록 권장하고 있다. 사물 유·학급 문고의 설치로 학교 교실이 학생들에게 보다 긴밀한 그리고 보다 친밀한 생활의 장이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학교가 학습에 필요한 모든 물건을 날마다 모조리 들고 가서 오직 지식만을 전수 받고 돌아오는 거래 장이 아님은 물론이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생활의 장이고 그것은 또한 도의적인 생활의 장이 되어야 한다. 학교 교실은 적어도 학생들의 생활에 소용되는 옷가지·책 가지들을 놓아두고 돌아와도 안심할 수 있는 생활의 장이 되어야 하겠다. 이 같은 도의적인 교실 생활의 습성이야말로 졸업하고 나가서 사회생활을 하는데도 그대로 이어져야 할 학교 교육의 참모습이라 할 수 있다.
고도로 기능이 분화되어 가고 있는 현대 생활에서는 직장 생활과 가정 생활 사이에는 서로 분리하는 것이 정신 건강에 좋을 경우가 많다. 사실상 많은 직장인들이 가정에서의 시간과 직장에서의 시간에 각각 다른 생활을 하고 있다. 학급 문고나 교실 안의 사물 고 설치는 그같은 앞으로의 사회생활에 있어서의 기능 분화의 한 싹으로도 볼 수 있겠다. 어른의 입장에서 아이들의 책가방이 가벼워진다는 소식을 우선 호의의 미소로써 지켜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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