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도서관 건립은 백년 대계로|반세기만에 헐리는 국립 중앙 도서관 이전 문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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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이번 국립도서관의 이전에 대해 도서관 전문가들은 앞으로의 지식 증가에 대처하려면 충분한 기초 조사를 거쳐 적어도 50년 앞은 내다봐야 할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국립 중앙 도서관의 장서는 해방 이후 27년간 24만권이 늘어 연 평균 1만권이 안되지만 지난해엔 4만 권이 증가했다. 지참 가속화 원칙을 적용치 않고 연 평균 4만권 증가로만 잡더라도 50년 후의 장서가 2백50만권이 된다는 계산이다.
국립 중앙 도서관이 36층 「매머드·호텔」 건립에 밀려 곧 헐리게 된다는 소식이다. 그러나 국가 지식의 상정이라 할 수 있는 국립 중앙 도서관이 어떤 규모로 어디에 신축되어 언제 이전될 것인가에 대해서는 아직 아무런 계획이 세워져 있지 않다. 관광 「호텔」이라는 현대의 바람에 개화기의 명물이 사라진다는 감정보다는 더욱 심각한 문제점들을 안고 있는 것이다.
서울 중구 소공동 6번지 국립 중앙 도서관은 1923년12월 준공되어 25년4월3일 개관했으며 대지 l천9백77평에 건평 1천4백41평의 목조 3층 건물. 서고 5백69평과 열람실 1백75명 3백 석에 현재 51만9천3백52권의 장서를 가지고 있다.
서울 인구 30만명을 목표로 세워 졌다는 이 도서관은 장서 수용 능력이 28만권으로 이제 그 2배를 수용한 초 포화 상태인 것이다. 해방 당시에 이미 28만권으로 적정 선이었는데 그후 24만권이나 늘어났지만 지금까지 건물은 단 한번도 증축되지 않았다.
현재의 건물이 낡고 협소해서 새 도서관 건물의 신축은 오래 전부터 절실한 문제였다. 또 65년 민족 문화 「센터」 계획 때부터 이 국립 도서관의 이전 말이 있었지만 아직까지 구체적 계획이 세워져 있지 않다는 것은 그만큼 당국이 도서관에 대해 적극적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는 말이 된다. 더구나 국립 중앙 도서관은 문교부 산하 기관인데 재산 관리는 총무처로 넘어가 더욱 문제가 되고 있다.
오늘날 도서관은 국가의 성장을 나타내는 「버로미터」며 선진국·후진국의 구별도 지식 문헌을 얼마나 가지고 있는가로 결정 될 정도다.
현대의 정보 사회에서 격증하는 지식의 축적에 대비, 각 국은 모두 국립도서관에 커다란 비중을 두고 있다. 영국은 최근 셋으로 나눠져 있던 국립도서관을 「브리티쉬·라이브러리」로 통합했으며 「필리핀」도 새 국립 도서관을 신축했으며 미 의회 도서관은 무려 1천5백만권의 장서를 가지고 있다.
현대 문명의 발달로 지식은 가속화 원칙이 적용되며 매 15년을 주기로 배증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선진국의 유수 도서관들은 앞으로 30년 안에 억대의 장서를 가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도서관의 서고는 보존 서고의 경우 평당 4백80권, 활용 서고의 경우 3백20권, 평균해서 평당 4백권을 수용할 수 있다. 따라서 2백50만원의 장서를 수용하려면 서고만 6천2백50명이어야 한다. 또 서고는 전체 건물 면적의 25%를 차지해야 하므로 새 국립 도서관의 건물은 2만5천평이 필요하게 된다.
또 도서관 건물 중 서고는 문헌의 보존을 위해 완전히 외부와 차단·방화·방습·방충 시설 등을 갖춘 현대식 건물이어야 하며 따라서 새 도서관의 신축은 충분한 사전 조사와 연구를 거쳐 신중하게 다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도서관은 건물 뿐 아니라 대지도 중요하다. 앞으로 무한히 발전할 것에 대비, 미리 충분한 대지를 확보해야 하며 많은 정보를 많은 사람들이 손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비교적 도심지에 위치해야 하는 것이다.
또 도서관은 보고와 열람실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연구실·강당·「세미나」실 등 문화·학술적인 부대 시설을 갖춰야 한다. 외국의 경우는 도서관에서 미술 전시회와 음악회까지 열고 있다는 것이다.
52만권의 귀중한 장서를 어떻게 상하지 않게 옮길 것 인가하는 것도 커다란 문제지만 도서관 전문가들은 이번 이전을 계기로 국립 중앙 도서관의 기구까지 쇄신, 효율적으로 운용하는 도서관 정책이 아쉽다고 말하고 있다.
문공부 산하의 장서각, 서울대 소속의 규장각, 총무처의 정부 기록 보존 소동이 모두 국립도서관에 합쳐져야 하며 관장직을 적어도 국립 중앙 박물관과 같게 별정직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문교부 산하 기관인 국립 중앙 도서관의 관장직은 지금까지 이사관 급이었으며 행정 관청과 같은 잦은 인사 이동으로 좌천 자리, 또는 다음 이동을 기다리는 관직으로 밖에 여겨지지 않았다. 이러한 인사 원칙에 반발, 2년 전 이창세 관장은 본 청으로 영전되었음에도 관직을 떠나기도 했다.
해방 전까지 21년 동안은 「오기야마·히데오」 (적산수웅)라는 일본인 관장 한 사람뿐이었음에 비해 해방 후 27년 동안에는 무려 15명의 관장이 드나들었다. 이중에는 1년 미만의 관장이 7명이었으며 단 3개월 근무한 관장도 있었다. 이와 같이 관장이 자주 바뀌어서는 진정한 도서관의 발전을 기대해 볼 수 없는 것이다. <이영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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