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루지 영감님이 되살려낸 '나눔의 크리스마스'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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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홍주연

고마워요, 스크루지 아저씨!

지난주 『빨간머리 앤』에서 칼뱅파 개신교도들은 크리스마스를 명절로 쇠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다는 이야기를 했다. 예수의 탄생을 기리는 본래 취지와 멀어져 먹고 노는 축제로 변질됐다는 것이 이유였다. 크리스마스만이 아니다. 중세 유럽의 공휴일은 거의 다 가톨릭 기념일이었기에, 16세기의 종교개혁 이후 가톨릭에 반대하는 개신교도들은 기존의 축제들을 이교도의 풍습이라고 거부했다.

실제로 크리스마스가 고대 로마의 동지 축제와 다른 지역의 태양신 숭배에서 영향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가톨릭 교회가 이교도의 풍습을 받아들인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예수 사후 탄압받던 기독교는 313년에 콘스탄티누스 황제에게 공인받은 후 392년에는 테오도시우스 황제에 의해 로마 제국의 국교가 된다. 이제 기독교 교회는 로마 제국이 영토를 확장하면서 여러 민족을 받아들임에 따라 이들의 종교와 풍습을 수용할 방법을 찾게 된다. 그중 한 방법이 여러 지역의 고대로부터 전해 내려온 민간 신앙과 풍습, 농민들의 연간 행사를 기독교 축제로 받아들여 달력에 반영하는 것이었다. 이는 교회가 민중의 정서에 다가가기 위한 방법이기도 했다. 하지만 종교개혁 이후, 고대 이교도의 풍습까지 포용했다는 이유로 이들 가톨릭 축제는 신교도들에게 공격받게 되었다.

크리스마스를 법으로까지 금지한 것에는 정치적 이유도 있었다. 유럽의 종교개혁은 근대 민족국가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영국의 청교도들은 1647년 청교도 혁명 이후 크리스마스를 법으로 금지한다. 이에는 크리스마스를 성대하게 축하하는 영국 국교도나 가톨릭 신자가 많은 왕당파를 공격하기 위한 정치적 의도도 있었다. (청교도 혁명의 지도자 올리버 크롬웰이 사망한 후인 1660년 가톨릭 교도였던 찰스 2세는 크리스마스를 다시 부활시켰다.) 미국의 경우 원래부터 청교도 이민자들은 크리스마스를 금지했지만, 영국과 싸우던 독립전쟁 시기에는 크리스마스를 영국의 풍습이라고 여겨 더욱 엄격히 금지했다.

크리스마스 금지에는 경제적 이유도 있었다. 칼뱅파 개신교도들은 근면과 금욕을 강조했다. 원래 농한기인 동짓날의 축제였던 크리스마스는, 공장이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산업혁명 시기에 이르러서는 시대와 맞지 않는 명절이 되어버렸다. 자본가 개신교도들이 보기에 크리스마스 전후부터 1월 초까지 계속 쉬게 되는 기존 풍습은 맘에 들지 않았다. 그리하여 영국에서 법으로 크리스마스가 금지된 후, 크리스마스를 기념해 일을 하지 않고 집에서 쉬는 것은 범죄로 여겨져 형법으로 다스려졌다.

하지만 19세기에 이르자 금지법이 있건 없건 크리스마스는 일반 대중들에게서 멀어져 갔다. 크리스마스는 가을걷이가 끝나고 겨우내 먹을 저장음식을 쌓아두고 한숨 돌리며 태양의 부활을 축하하던, 근대 이전 농촌사회에서 즐기던 축제였다. 낮은 급료를 받고 일 년 내내 굶주림에 시달리는 도시의 임금노동자들이나 산업혁명 이후 파괴된 농촌 지역의 빈농들에게는 이미 실질적인 명절이 아니었다. 명절로 쇤다고 해도 일부 부자들만 배불리 먹고 마실 뿐이었다. 이렇게 여러 가지 이유로 사라져 가던 위기의 크리스마스를 되살려 우리에게 선물한 작품이 있다. 바로 영국 작가 찰스 디킨스가 1843년에 발표한 소설 『크리스마스 캐럴』이다.

『크리스마스 캐럴』의 주인공 스크루지 영감은 오직 돈만 알았다. 하나뿐인 조카도 돌보지 않고 병든 아들을 둔 부하 직원에게도 몰인정한 사람이다. 부자 사업가이지만 베풀 줄을 몰랐던 그에게 크리스마스 전날 밤, 유령들이 방문한다. 스크루지 영감은 유령을 따라다니며 자신의 과거, 현재, 미래의 모습을 보고 난 후 깨달아 이전과 다른 사람이 된다. 너그러운 마음을 지니고 가난한 사람에게 베푸는 사람으로 거듭난다. 이 작품의 성공 이후 디킨스는 해마다 한 편씩, 총 다섯 편의 『크리스마스 이야기』 연작 시리즈를 발표한다. 크리스마스 본연의 정신인 약자에 대한 배려와 베풂의 정신을 되살려준 이 시리즈 덕분에 이후 크리스마스는 가톨릭 개신교를 떠나, 기독교도가 아닌 사람들까지 모두 축하하는 세계의 축제가 됐다.

고마워요, 스크루지 아저씨! 아저씨 덕분에 크리스마스도, 산타할아버지도, 루돌프도 해마다 우리에게 돌아오게 됐어요. 우리가 겨울이면 주위의 배고픈 사람을 돌아보게 됐어요.

박신영『백마탄 왕자들은 왜 그렇게 돌아다닐까』 저자, 역사에세이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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