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사회적 기업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정부는 주식회사의 유한 책임 제도를 악용하여 기업 재산을 유출, 부실화시킨 73명을 반사회적인 기업인으로 낙인찍어 강력한 제재 방침을 공표했다.
정부의 이 같은 강경 조치가 불가피하게 된 상황을 우리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으며, 이를 계기로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모든 분야에서 개혁해야 할 일은 대담하게 손질해야 할 줄로 안다.
그러나 정부가 반사회적 기업이나 기업인들을 공표했다고 해서 이미 엎질러진 낭비가 복구되지는 않을 것이다. 이런 뜻에서는 이번 발표는 하나의 경고적인 성격의 것이라 하겠으며, 때문에 차제에 그러한 현상이 왜 생겨났으며 또 그것을 배제키 위해서는 어떤 조치가 필요한 것인가를 냉정히 반성해야 할 것이다.
우선 왜 그러한 현상이 야기되었느냐 하는 점에 대해서 깊은 검토가 있어야 하겠으며,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오로지 기업인에게만 전가시켜도 아니 될 것이다.
원래, 기업인은 돈을 벌기 위해서 사업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근대 자본주의를 성립시킨 배경에는 능률과 정직, 합리주의 정신 등 강한 윤리적 동기가 작용하고 있었음을 외면해서는 안 될 것이다. 자본주의 경제를 움직이는 원동력이 아무리 이윤 동기에 있다고 하더라도, 거기에는 어디까지나 한계가 있는 것이며, 또 그렇게 해서 얻어진 이윤을 재투자, 확대 재생산의 「메커니즘」에 올려놓음으로써 보다 질 좋고 값싼 제품을 소비자에게 공급하여 이익을 사회에 돌린다는 윤리적 책임이 따르는 것이다. 그런데도 흔히 기업인들 가운데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벌어야 하겠다는 집념을 버리지 못하는 경향이 있는 것은 어찌 할 수 없는 일이라 하겠는데 이러한 기질은 사회 풍토가 그것을 용납 할 때에야 비로소 현실 문제로 등장하는 것이 또한 특색이라 할 수 있다. 사리가 이와 같다면, 반사회적 기업의 출현은 사회 풍토 문제와 떼어서는 생각할 수 없는 것이며, 이를 압축하면 곧 금융 행위상의 부조리와 직결되는 것임을 솔직이 시인해야 할 것이다.
오늘날 반사회적이라고 낙인찍힌 기업인이나 기업들은 대부분 그 경영 능력으로 보아 출발점에서부터 별로 성산이 없던 사람들이라 볼 수 있으며, 그러한 기업이나 기업인들에게 어찌하여 거액의 여신이 이루어 질 수 있었느냐 하는 본질 문제를 해명해야 할 것이다.
즉 금융 당사자들이 오판하여 그러한 현상을 야기 시켰는가, 아니면 불가피한 사정이 있어 처음부터 부실화할 것을 알면서 여신 했기 때문에 그렇게 되었는가를 가려내야만 반사회적 기업인의 재출현을 근절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반사회적 기업인이 공표된 이상, 그를 발생케 한 또 다른 측면의 책임 문제도 규명하여 동등한 조치를 취하는 동시에 금융상의 부조리를 과감하게 정리해야 할 것이다. 솔직히 말하여 오늘의 금융계는 은행장 이하 모든 직원이 단순한 봉급생활자일 뿐 실질적인 경영층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봉급생활자의 속성은 오랫동안 월급을 타고 시일이 지나면서 승진하는 것만이 관심사의 전부라 해도 결코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그러므로 자기 자리를 유지하는데 지장이 있는 일은 되도록 피하려고 하는 것이 상정이며, 때문에 이른바 압력에는 약하게 되는 것이다. 금융계의 이러한 상황을 근본적으로 시정해 주지 않는 한, 봉급 생활자 집단에 부과한 금융계를 근본적으로 개혁할 수는 없다. 오늘의 금융 경영층이 자기 돈을 융자하듯 신중하게 여신을 다뤘다면 엄청난 부실 대출이 누적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점에서 이 문제는 좀더 깊이 있게 검토되어야만 한다.
끝으로 상법상의 유한 책임 원칙을 무시하고서라도 무한책임을 묻는 것이 현실적으로 보아 불가피하다는 점은 누구나 인정해야 하겠지만, 주식회사 제도를 발달시켜 주식 대중화를 기한다는 고차원의 정책 과제로 보아서는 이번 조치에 상당한 문제점이 있다는 것도 숨길 수 없다. 그러므로 앞으로 창달시켜야 할 주식회사 제도를 위축시키지 않도록 세심히 배려하면서 이른바 반사회적 기업인을 응징한다는 원칙을 확립해 주기 바란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