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제, 링거는 뽑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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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미국이 양적완화 축소의 강(江)을 건너기로 결정했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18일(현지시간) 이틀간의 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를 마친 뒤 “현재 월 850억 달러인 자산매입 규모를 내년 1월부터 750억 달러로 100억 달러 축소한다”고 발표했다.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는 세계 경제가 정상화를 향해 첫걸음을 내디뎠음을 의미한다. 바로 통화량 축소다. 미국은 지난 5년간 경제를 되살리기 위해 3조 달러 이상의 돈을 풀었다. 과잉 유동성의 단맛을 즐겼던 세계 경제는 그 돈이 다시 미국으로 빨려 들어가는 소용돌이에 직면하게 됐다.

 양적완화를 통해 시장에 돈을 강제로 주입하는 것은 환자에게 ‘링거’를 꽂는 것과 같다. 링거에 의존해 응급실에 너무 오래 있으면 환자 상태가 더 나빠질 수 있다. 적절한 때를 찾아 스스로 음식을 먹고 운동도 시작해야 체력이 정상으로 돌아온다. 연준은 그 타이밍이 바로 지금이라고 본 것이다.

 상식적으로 돈줄을 죄는 것은 시장이 겁낼 소식이다. 그런데도 이날 미국 증시의 다우지수와 S&P500지수는 각각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다우지수는 1.8% 뛴 1만6167.97로 거래를 마쳤다. 양적완화 축소를 미 경제 회복에 대한 확신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웰스파고 프라이빗뱅크의 에릭 데이비슨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연준의 이번 결정이 경기에 대한 자신감을 고무시켰다”고 말했다.

 이날 발표로 분명해진 게 몇 가지 있다. 우선 내년에도 양적완화 축소는 계속된다. 전제조건이 있다. 현재 7%까지 내려온 실업률이 더 떨어져야 한다. 실업률이 예상보다 빨리 연준 목표치(6.5%)에 근접하고, 인플레이션이 2%를 향해 빠르게 올라가면 양적완화 축소 규모가 더 커질 수 있다. 그 반대도 가능하다.

 기준금리 인상을 통한 본격 출구전략 시점은 2015년이 유력하다. 이번 FOMC 참석자 가운데 대다수(17명 중 12명)는 기준금리 첫 인상 시점을 그렇게 판단했다. 사실상의 제로금리(0~0.25%)가 앞으로도 1년 이상 유지될 것이란 얘기다. 연준은 “기대인플레가 계속 2% 아래에 머무는 한 실업률이 6.5% 밑으로 떨어져도 상당 기간 현재의 금리를 유지하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고 밝혔다.

 그러나 계산대로 움직이지 않는 게 경제다. 탄력을 받으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달아오르기도 한다. 너무 낮아서 걱정인 물가도 한순간에 튀어 오를 수 있다. 캐피털 이코노믹스의 폴 에쉬워스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내년 여름께면 양적완화가 완전히 중단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 다음은 금리 인상이다.

  세계 각국 경제의 운명은 어떻까. 일률적으로 말하긴 어렵다. 이날 각국의 주가가 다르게 반응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일본·인도·호주는 주가가 올랐고, 중국·홍콩·말레이시아는 내렸다. 한국 코스피지수는 제자리였다. 올 하반기 연준이 양적완화 축소를 예고했을 때 글로벌 자금은 도리어 한국으로 들어왔다. 경상수지와 물가가 안정된 점이 부각된 덕분이었다. 결론은 역시 경제 기초체력을 얼마나 다지느냐에 달렸다.

뉴욕=이상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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