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국민은 사이버심리전 대상이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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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사이버사령부의 대선 개입 의혹 수사 결과가 발표됐다. 국방부 조사본부가 진행한 수사에 따르면 3급 군무원인 이모 사이버심리전 단장이 “정치적 표현도 주저하지 말라”고 지시함으로써 소속 부대원들이 정치적 내용의 글을 대거 인터넷에 올렸다고 한다. 국방부는 그러나 단장의 지시를 전·현직 사령관이 몰랐고, 청와대·국정원은 개입하지 않았으며 대선에 개입하지도 않았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민주당은 3급 군무원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는 “꼬리 자르기 수사”라고 반발했다. 이에 따라 사이버사령부 대선 개입 의혹이 해소되지 않고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사이버사령부 수사 결과가 얼마나 실체적 진실을 밝혀냈는지는 단언하기 어렵다. 이 부분은 상당한 시일 뒤에야 진상이 밝혀질 것이다. 다만 당장의 관심은 이번 수사에서 군 당국이 스스로 밝혔듯이 군이 정치적 중립 의무를 어겼다는 점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 동기가 무엇이든 선거가 진행 중인 국면에서 특정 정치인을 비방하는 내용을 유포시킨 것은 선거에 불법적으로 개입한 결과가 됐다.

 문제는 사이버사령부나 국가정보원이 운영하는 심리전이 언제든 이번과 같은 불법행위로 연결될 우려가 크다는 점이다. 북한의 대남 사이버심리전 공격이 기승을 부리는 상황에서 이를 억제하고 차단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북한과 무관한 국민들이 개진하는 정치적 의사에 대해 똑같이 개입하고 차단하는 것은 민주주의 기본 원칙을 훼손하는 일이다. 군이든 관이든 절대로 해선 안 될 일인 것이다.

 북한의 대남 사이버 공격과 우리 국민의 의사 표현을 철저하게 구분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사이버사령부든, 국정원이든 심리전을 하는 목적과 대상은 북한이지 우리 국민이 아니다. 그런데도 김관진 국방부 장관은 지난달 국회에서 “대내 심리전”이라는 표현 아래 국민을 심리전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최고 군 당국자가 이 같은 인식을 가진 상태에서 사이버사령부가 정치 개입의 한계를 명확히 하기를 기대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