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적 대표단의 귀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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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평양에서 열렸던 제5차 남북 적십자회담에 참석했던 한적 대표단 일행 59명이 23일 무사히 귀경하게 됐다. 이번 회담에서는 제6차 회담을 오는 5월9일부터 서울에서 열기로 합의한 것 이외에는 별다른 합의문서 교환도 없이 폐막했으므로 굳이 이번 회담의 특색을 찾는다면 21일과 22일 이틀 동안에 걸쳐 두 번 회의를 가졌다는 사실 정도이다.
과거에도 오전, 오후로 나누어 하루에 두 번 회의를 가진 일은 있으나 3박4일 체재 중 날을 바꾸면서 두 번 회의를 가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는 남북적 대표단의 왕래가 이제 행사에 그치지 않고 문자 그대로 실질적인 토의를 위한 회의로 진전했다는 인상을 갖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회의는 비 공개리에 진행됐기 때문에 그 내용을 자세히 알 길이 없다. 다만 합의문서 없이 폐막한 것으로 보아 남북의 주장은 여전히 평행선을 걷고있는 것 같다.
지난 3·4차 회담 때 본 의제 제1항인 『주소와 생사를 알리는 문제』에 있어 한적측은 사업절차·공동서식·개시시기 등을 제의한 반면, 북적측은 여건형성·적십자대표부 설치· 요해 해설위원의 파견 등을 제의한바 있었다. 따라서 이번 회의를 끝내고서도 제1항을 둘러싼 남북간의 거리는 아직도 좁혀지지 않은 듯 하다.
1주일 전 평양에서 열렸던 조절위원회의에서도 합의문서 없이 헤어졌었다. 그러나 적십자회담과 조절위원회는 근본적으로 성격을 달리하는 것으로서 적어도 적십자 정신과 인도주의 원칙에 따라 흩어진 이산가족의 재결합을 실현하는 문제를 논의하는 회의에 있어서는 그 합의가 하루속히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남북으로 흩어진 1천만 이산가족의 가슴 아픈 고통을 덜어주고 그들을 재결합시키기 위한 적십자회담이 정치 이전의 민족적 양심과 동포애에 입각하는 것이라면 남북간의 체제 및 의견상 차이가. 아무리 현격한 것일지라도 가장 손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인 것이다.
남북대표가 따뜻한 악수를 하고 식사를 같이하여 선물을 교환하는 흐뭇한 광경은 바로 체제와 이념 이전의 민족적 양심과 동포애를 보여 주는 것이며, 적십자 정신과 인도주의 정신에 직결된 화합의 장정이다.
이미 합의된 의제들은 바로 위와 같은 정신을 기초로 해결하면 아무 문제될 것이 없다.
적십자 정신은 적대간의 전쟁 상이군인이라 하더라도 따뜻하게 치료해주는 정신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문제해결을 위한 현실적인 방법은 이미 확립된 보편타당한 적십자 원칙을 그대로 적용하면 되는 것이다. 보편타당한 원칙이란 양의 동서나 시대의 신·구를 가림이 없이 하나의 진리로서 현재 남북적간 해결의 공통점을 찾는데 있어서도 가장 합리적인 방법인 것이다.
이런 뜻에서 남북적 본회담이 시작된 지 이제 7개월, 무엇보다 선행되어야 할 『주소와 생사를 알아내는 문제』가 아직 합의를 보지 못하고 있음은 지극히 유감이다. 이제 오는 5월9일 서울에서 열리는 6차 회의에서나마 획기적인 진전이 있기를 기대할 뿐이다.
끝으로, 우리는 남북 대화의 의의를 인식하고 성급한 기대나 조급한 실망을 하는 일이 없이 인내와 성실로써 회담의 추이를 지켜보면서. 항상 뜨거운 성원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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