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봄 맞은 대학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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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진리는 무관심에서가 아니라 오류에의 관심에서부터 나온다. 이것이 서양의 근대를 개척한 사람들의 신조였다. 무 의견이 아니라 오히려 틀린 의견이, 부작위가 아니라 차라리 잘못된 작위가 옳은 의견, 참된 작위의 산모가 되는 것이다.
오류에서 진리에의 길은 때로는 길고 험한 우로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한 개인이나 한 사회집단의 발전을 위한 생명력은 바로 이같이 길고 험한 우로를 얼마나 용납하고 감당할 수 있는가에 따라서 자(척)질 할 수 있다.
성장하는 생명에 대하여 오류에서 진리에로의 우로를 용납해준다는 것은 그 생명의 보호를 맡은 자의 애정있는 인내요, 인내있는 애정이다.
그리고 현대의 교육이념에 있어서는 이처럼 잘못을 통해서도 배우는 사람의 「인」권을 보호해준다는 것이 가정의 어버이와 함께 「지상권」을 쥐고 있는 정부의 의무라 보편적으로 인식되고 있다.
정부가 2년 전의 학원사태 때 제적케 했던 대학생 1백67명의 복교·구제조치를 취하도록 한 결정은 잘한 일이다. 우리는 그 같은 용단과, 그로 해서 다시 학원에 되돌아올 수 있게된「잃어버린 자식들」, 그리고 그들을 맞아 활기를 되찾게 된 대학가에 다같이 축의를 표하고자 한다.
첫째, 정부가 제적 학생을 구제할 수 있게 했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오류에서 진리로의 우로를 감당할 수 있는 여유를 과시한 것으로 보고 싶기 때문이다.
둘째, 제적당한 대학생을 이 사회가 추방한 것이 아니라면, 그토록 교화를 위해서도 실상, 대학 이상의 좋은 장소를 상상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셋째, 쫓아낸 대학생을 다시 맞아들이는 「캠퍼스」가 그로 해서 명랑한 활기를 되찾았다면 그것은 대학이 대학본연의 모습을 되찾았다고 할 수 있겠기 때문이다.
대학이란 원래 「유럽」의 전통있는 명문대학이 구가하고 있는 것처럼 『살아있는 정신·생기 있는 정신』의 고장이요, 보금자리이다. 생기 없는 대학이란 이미 대학이 아니요, 그것은 한낱 전체주의의 교도소에 불과하다.
보도에 의하면 새봄을 맞은 대학가에서는 제적학생의 복교소식이 통고된 뒤 그 동안 중단됐던 학생자치활동을 다시 활발하게 재개할 채비에 분주하다고 한다. 학생회구성을 위한 각급 선거며 「서클」활동, 그리고 대학가의 명물인 갖가지 축제준비 등이 한창이라는 것이다.
이 같은 대학생들의 자치활동이란 그것 또한 대학의 정상적 교육기능에 속한다. 대학이 취직시험이나 고시준비를 위한 단순한 학관이 아닌 이상에는 학생들의 자발적인 「그룹」활동은 대학을 대학이게끔 하는 불가결의 요인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대학의 교육내용에는 인식의 능력·표현의 능력·노동의 능력 이외에 「사회적 능력」을 길러주는 것도 필수의 요건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는 대학생들의 자치활동·「그룹」활동은 졸업 후의 사회생활에 필수적인 훈련의 기회라 할 수 있다.
모처럼 기꺼운 서두로 새 학년을 장식하게 된 대학가에 보다 생기 있는 정신의 약동이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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