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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부에 대한 나쁜 시선 거둬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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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원혜영
민주당 국회의원

1998년 11월 한 젊은 목사의 시선이 서울 청량리역 앞에 있던 한 굶주린 노인을 향했다. 이 시선은 따뜻한 라면 한 그릇을 만들어냈고 이렇게 시작된 다일공동체의 ‘밥퍼나눔운동’은 지난 15년 동안 1500만 그릇이 넘는 밥이 돼 아프리카에까지 퍼져나갔다. 영화 ‘아바타’에서 두 남녀 주인공은 “아이 시 유(I see you·당신을 봅니다)”라는 대사로 사랑을 표현한다. 1500만 그릇이 넘는 밥도 그러한 사랑의 시선에서 시작된 것이다.

 이런 좋은 시선이 있는 반면 나쁜 시선도 있다. 기부를 탈세나 증세의 수단으로 바라보는 듯한 정부의 시선이 그것이다. 정부는 지난 1년간 수차례에 걸쳐 기부와 관련된 세제 정책을 수정했다. 올해 1월 기부금을 보험료·의료비·교육비 등과 함께 묶어 2500만원 한도 내에서만 소득공제가 가능하도록 해 고액기부자들의 기부 의욕을 꺾었다. 그러더니 지난 9월에는 근로소득자들의 기부금 세제혜택을 현행 소득공제에서 세액공제(3000만원 이하 15%, 3000만원 초과 30%) 방식으로 전환하는 세제개편안을 내놓았다.

 복지재원 확보라는 정부의 취지와 달리 이번 세제개편안이 시행될 경우 세수입이 730억원가량 증가하지만 기부금 감소는 1조2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민간 기부금의 복지예산 대체라는 기능적 측면에서의 손실뿐만 아니라 기부금 위축과 기부문화 분위기 저해 등 사회 전체적으로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소탐대실이 아닐 수 없다. 결국 기부를 줄이면서 세금을 더 걷겠다는 반기부적 발상이 낳은 나쁜 정책의 결과로 볼 수 있다.

 정부는 우리와는 달리 기부금 세액공제 비율이 66%에 달하는 프랑스를 눈여겨보아야 한다. 그리고 기부금에 대해서는 영국·일본·독일과 같이 소득공제 방식을 유지하는 것이 기부 활성화에 더 적합하다는 국회 예산정책처의 검토 결과도 주목해야 한다. 고소득자 입장에서는 근로소득과세표준 구간에 따라 높은 세율을 적용받는 소득공제방식이 세액공제방식보다 유리하기 때문에 기부 활성화를 위해서는 소득공제방식이 바람직하다는 내용이다. 그런데도 정부가 세액공제방식을 고집하는 이유는 ‘과세의 형평성 제고’라기보다는 기부에 따른 세제혜택을 차단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세수를 늘리겠다는, 이른바 우회적 증세를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현재 국회에서 관련 법안들의 심의가 진행 중이다. 하지만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논의만 무성할 뿐 어떠한 결론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 기부가 집중되는 연말이 얼마 남지 않았음에도 정부는 올해 기부금에 대한 세제혜택을 어떻게 적용하고 처리해야 할지 뚜렷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결과적으로 과세당국의 기부에 대한 나쁜 시선이 선한 기부자들과 어려운 이웃들에게 상처를 주고 있는 것이다.

 기부는 ‘복지 직거래’다. 다일공동체의 1500만 그릇의 밥이 아프리카에까지 확산할 수 있었던 것은 기부자들의 선한 시선과 자발적 참여 때문이다. 기부자들의 자발적 나눔은 국가가 주도하는 그 어떤 복지정책보다 더 효과적이고 파급력이 크다.

 삐뚤어진 시선은 삐뚤어진 정책을 낳게 마련이다. “어떻게 하면 기부자들에게 세금을 더 걷을 수 있을까”를 고민하기보다 ‘지금부터·여기부터·나부터 실천한다’는 다일공동체의 나눔정신을 곱씹어야 한다. 더 이상 법과 제도가 기부 활성화의 장애가 되어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 “현행법대로라면 올해는 더 이상 기부하지 않겠다”는 수많은 기부자에게 서둘러 답을 주어야 한다. 올해가 얼마 남지 않았다.

원혜영 민주당 국회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