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정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아직도 싸늘한 초봄의 햇살아래 또 다시3·1절을 맞는다. 그 때 거리마다 마을마다 「독립만세」를 외치던 학생들도 어언 고희를 넘게 되었지만 이날이 갖는 뜻은 날이 갈수록 크고 새롭다.
워낙 줄기차게 계속되었던 독립운동이었으므로 그 성격을 한 마디로 말하기는 퍽 어려운 점이 있다. 그러나 우리의 오랜 역사 가운데에서도 온 민족이 한데 뭉쳐 목숨을 바쳐가며 독립을 절규하던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러나 그 중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이 바로 3·1 운동이었던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19세기말부터 20세기초까지만 하더라도 우리의 애국하는 길, 즉 민족운동에는 몇 갈래가 있었다. 흔히 말하는 수구파와 개화파, 같은 개화파 가운데서도 친청·친노·친일 등으로 각각 뜻이 엇갈린 채 나라를 잃고 말았지만 그 뒤 10년 만에 일어난 이 3·1 독립운동은 그 모든 것을 초극하고 포용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이를 기점으로 국내는 물론 중국에서, 연해주에서, 미주에서 우리 동포가 살고 있는 모든 땅위에서 다시 독립을 외치는 횃불은 꺼질 줄 모르고 타오르게 되었다.
따라서 우리 민족운동 사상의 3·1운동이란 마치 모든 계곡의 물이 한곳으로 모여서 거기서 다시 여러 강의 물줄기로 나뉘듯이 큰 호수와 같은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하여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이 운동에서 우리가 또 하나의 특징을 찾는다면 그것은 민주적인 성격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당시에 팽배하던 민족자결의 원칙에 힘을 입어 독립을 외치던 우리 부형들은 막연하나마 한 민족의 민주적 독립을 바라고 있었던 것이지 옛 대한제국을 부활시켜 보려는 생각은 없었다.
따라서 이 운동이 우리의 최초의 민주주의적 민족운동이라고 하여도 큰 망발은 아니라고 여겨진다.
흔히 애국심이란 사람의 원시적인 감정에 바탕을 두고 온갖 배타적이며 오만스럽고 잔인한 행동이 자행되는 예를 볼 수 있는데, 3·1운동은 자유와 민주의 기초 위에 서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 가운데서 애정과 봉사와 관용의 정신을 찾을 수 있었다.
여하간 민족에 대한 우리 민중의 종교적 정열이 영국의 시민혁명이나 「프랑스」혁명이나 미국의 독립전쟁 못지 않게 타오르던 이 날을 맞으며 깊이 새겨둘 일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즉 애국심이 우리에게 적극적인 뜻을 갖는 것은 그것이 민주주의와 잘 결합되는 경우에 한한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애국의 이름아래 행하여지는 일이라도 그것이 비민주적인 경우에는 허울만 좋을 뿐이지, 사실은 되려 위험스러운 행동이 되기 쉽다는 걸 잊어서는 안 되겠다.
조국은 항상 하나이며 민족도 항상 하나이지만 이 하나에 봉사하는 길은 결코 하나일 수 없다는 것이 진정한 애국심이다. 현대의 애국심이란 서로 반발하는 수단이나 방법을 배제치 않는 것을 상식으로 알고 있다. 그러므로 민주주의는 애국심을 발휘하는 합리적인 길을 가르쳐 주고 있는 셈이다.
금년에도 예에 따라 갖가지 기념행사가 있지만 당국이나 국민은 월력에 나타난 3월 1일의 영광과 운명과 사명을 다시 한번 올바르게 새겨보며 뜻 있는 내일을 위한 하루가 되도록 보내야 할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