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격해서 뿌듯한데 최고령 감독 돼 허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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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항서 감독은 “더 나이 들기 전에 우승했으니 더 바랄 게 없다”고 했다. [정시종 기자]

“K리그 클래식 최고령 감독이 되다니…, 허망하다.”

 프로축구 K리그 클래식(1부리그) 상주 상무 박항서(56) 감독의 말이다. 박 감독은 나이 먹는 헛헛함을 토로했지만 사실 2013년 한 해는 그의 축구 감독 인생에서 가장 특별한 해였다. 상주는 K리그 챌린지(2부리그) 출범 첫 해 우승팀이 됐고, 지난 7일 K리그 사상 최초로 1부리그에 승격했다. 박 감독은 2013 K리그 대상에서 챌린지 감독상을 수상했다.

 1989년 LG 치타스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박 감독은 코치로서 히딩크 감독을 도와 2002 한·일 월드컵 4강을 함께했고, 2002 부산아시안게임에서는 대표팀 감독으로 동메달을 일궈냈다. 프로팀에서는 2005년 경남FC 초대 감독이 돼 2007년 정규리그 4위를 차지하는 돌풍을 일으켰으나 우승이나 감독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16일 서울 서소문로 중앙일보에서 만난 박 감독은 “사실 지도자 생활을 하면서 가장 의미있는 한 해였다”고 했다.

 우여곡절이 많았다. 상주는 시즌 전부터 챌린지 우승 1순위로 꼽혔다. 국가대표 출신 이근호·이호의 입대와 더불어 기존 김재성·최철순 등으로 호화 멤버가 꾸려졌다. 화려한 스타 선수가 즐비한 스페인 프로축구 명문 레알 마드리드 같다고 해서 ‘레알 상주 상무’라고 불릴 정도였다. 하지만 시즌 초반 라이벌 경찰축구단에 밀려 2위에 머물렀다. 설상가상으로 지난 7월에는 박 감독이 경기 중 지속적인 판정 항의로 퇴장당했고 7경기 출장 정지를 받았다. 박 감독은 “지도력이 도마 위에 오르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감독직을 그만둘 생각도 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박 감독에게는 반드시 기회가 온다는 믿음이 있었다. 개성이 뚜렷한 선수들이 경기를 치르면서 조직력이 다져졌기 때문이다. 기회는 왔다. 리그 후반에 K리그 최다연승(11연승) 신기록을 세우며 선두에 올라섰고 11월 초 일찌감치 우승을 확정지었다. 그 덕분에 승강 플레이오프에서 만난 강원FC에 대한 전력 분석도 철저하게 할 수 있었다. 상주는 승강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강원을 4-1로 대파하며 1·2차전 합계 4-2로 수월하게 승격에 성공했다.

 1부리그 승격의 기쁨은 반나절뿐이었다. 클래식에 올라가는 박 감독의 마음은 착잡하다. 박 감독은 “고생문이 열렸다. 제대하고 입대하는 선수들이 계속 엇갈리면서 팀 조직력을 다질 수가 없다. 이번에 16명이 입대하는데 시즌 준비 기간인 1~2월은 훈련소에 입소한다. 부대에는 2월 말에나 들어와서 4월쯤에나 컨디션이 좋아질 것”이라고 했다. 결국 2014 시즌 초반을 날릴 수밖에 없는 상황. 박 감독은 “목표는 1부리그 잔류”라고 강조했다.

 박 감독이 클래식으로 올라가는 마음이 썩 들뜨지 않는 이유는 최고령 감독이 되는 것도 있다. 울산 현대 김호곤(62) 감독이 최근 사퇴하면서 박 감독이 현재 최고령 감독이 됐다. 박 감독은 “내가 최고참이 된다니까 허망하다. 이 정도로 늙었구나 생각하니까 쓸쓸하기도 하다”며 “그래도 더 나이 들기 전에 우승을 해봤으니 더 이상 바랄 게 없다”며 웃었다.

글=박소영 기자
사진=정시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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