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BC와 영 정부…「남과 남의 사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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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하여간 지독한 인간들이다. 이런 일이 있었다. 북 「아일랜드」 구교도들과 신교도들 사이의 살인 「테러」가 절정에 달하고 있을 때다.
이런 판국에 두 쪽 대표들을 맞대 놓고 설전을 TV로 방송해 놨다간 가뜩이나 살기 등등한 감정이 한결 더 덧날 위험성이란 아닌 게 아니라 꽤 컸다고 볼 수도 있었다. 「히드」 정부의 내상이 BBC 방송국에 이 「프로」의 보류를 종용한 것도 그런 까닭에서다.
제 아무리 BBC라 한들 애국하자는데 외면 하지야 않을게 아니냐고도 덧붙였다.
그러나 물론 방송은 그대로 나갔다. 그들이 막무가내로 그 방송을 내보내고 만 까닭이야 물을 것도 없다. 그게 위협적인거건 말건 있는 사실을 그대로 깡그리 까 내놓고 국민들에게 판단케 한다는 게 BBC가 보는 애국이고, 『과연 무엇이 애국이냐』의 판정은 권력의 점유물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방송도 나갔고, 그후 여전한 종교 「테러」속에 숱한 목숨들이 죽음을 당하기도 했다.
어떻게 보면 이상스런 얘기다. 도대체 BBC란, 예산을 정부에서 타다가 쓴다. 국장도 수상이 임명한대도 괜찮다. 그러면서도 BBC에서 무슨 얘길 어떻게 하느냐에 이르면 BBC와 정부 사이는 이를테면 「너는 너고 나는 나다」의 관계다. 물론 집권당이 BBC를 통해 당이나 정부의 선전을 마구 늘어놓는 때도 있다. 소위 정당 방송 (Par-ty Broadcast) 시간 때다. 그러면 야당에서도 똑같은 시간만큼 정치 선전을 마구 늘어놓는다.
그게 비위에 거슬린다고 「권력을 잡은 통에 한번…」하는 생각, 있을 법하면서도 누구도 하지 않는다. 응, 과연 영국이라 서로들 너그럽구나, 할는지도 모른다. 천만의 말씀이다. 너그러워서라기 보다 무서워서다. 또 무서워서란 뭐 BBC의 힘이 대단해서도 아니다. 「가장 영국적인 것을 훼손한다는 가장 비영국적인 불명예」가 이들에게 무서움으로 쳐선 염라대왕쯤은 되기 때문이다. 「버킹검 궁전」, 「셰익스피어」극, 「롤즈·로이스」 자동차, 하오의 「티」(끽다), 「이튼」 중학교 따위 모두가 아주 영국적인 것들이라면 BBC (독립된) 또한 그런 것에 못잖은 영국적 전통의 일부다.
BBC가 첫 방송을 시작한지 지난 11월 달로 꼭 50년이 됐다. 축하연엔 여왕도 왔다. 「히드」도 오고 「윌슨」도 와서 축배를 들었다.
아마 축배의 대상은 BBC 50년이기보다는 제 자신들의 전통이 있는지도 모른다.
BBC는 BBC 대로 우겨 온 방송국 친구들, 확실히 지독하다. 그러나 권력자이기에 앞서 영국인이다 라는 정객들은 어떻게 보면 더 지독하다. 아니, 더 지독한 건 그들로 하여금 그렇지 않곤 배기지 못하게 하는 영국인이란 종자인지도 모른다.
【런던=박중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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