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의 휴전 성립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미국과 월맹은 1월 24일 정오(한국시간) 공동성명을 통해 월남휴전협정이 성립되었음을 세계에 발표했다. 이 협정은 1월 27일 미국·월남·월맹·「베트콩」등「파리」평화협상에 참가한 당사자들에 의해 정식 조인 되는대로 즉각 발효키로 돼 있다.
미국정부가 공식으로 발표한 휴전협정의 내용은 ①조인과 동시에 즉시 휴전 ②60일 내에 모든 외국군의 철수 및 포로교환 ③30일내 12개국 국제회의를 열어 휴전협정의 유효한 실시를 보장 ④「민족 화 해 위」를 만들어 총 선을 실시 ⑤「티우」월남대통령 지도체계의 계속 보존 ⑥북위 17도선 비무장지대의 존중 ⑦전후 미국-월맹관계의 개선 등을 골자로 하고 있다.

<30년 전화의 일단 종식>
상기 협정내용은 72년 10월 미-월맹간에 성립되었던 휴전에 관한 9개 항목 합의를 토대로 하여 이에 약간의 수정을 가한 것이다.
휴전협정의 조인 발효로 월남에서는 일단 전화가 멎기로 되었다.
이는 30년을 두고 전화에 시달려오던 월남민족을 위해서는 물론, 세계평화의 확립을 위해서도 대단히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휴전협정은 월남정부를 도와 참전했던 미국이나 연합국이 월남전쟁에서 이탈하고, 월남의 정치적인 장래를 민족자결에 맡겨 놓은 것이기 때문에 과연 진정한 평화의 회복을 의미할 수 있는가, 처음부터 의문이 크다. 왜냐하면 17도선 이남에 민족 화 해 위를 만들고, 그 관리하에서 총 선을 실시하여『중립·연립·통일정권』을 만들기로 약속해 놓았지만, 외국군 철수 후 총 선의 준비나 실시 과정에서 내란이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별로 없고, 휴전의 유효한 실시를 보장하기 위한 국제회의나, 불과 1천여 명의 휴전감시 군이 내란의 발생을 막을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휴전협정의 성립은 월남전쟁을 국제전쟁에서 벗어나게 한 조치라고는 할 수 있을망정, 확고부동한 평화의 수립을 약속해주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월남에서의 민족자결원칙의 적용이 적대세력들을 화해시키고 총알 대신 투표를 가지고 월남에 안정된 법질서를 이루어주기를 염원할 뿐이다.

<민족자결 원칙의 성패>
그러나 우리는 휴전협정이 연합군철수 이후에도 15만 내지 30만 명으로 추산되는 월맹군 병력을 17도선 이남에 계속 잔류하도록 인정함으로써 이 협정에서 구가되고 있는 민족자결원칙의 평화적인 적용이 어느 순간에도 위협받게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크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점 미국을 위시한 월남참전 자유국가들은 앞으로도 계속 이 원칙의 평화적 적용을 관철시켜야할 도의적 의무를 지닌 것임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는 소이 이다.
총체적으로 평가할 때, 월남전쟁은 한국전쟁 때와 마찬가지로 공산군의 도발적 침략에 의해 저질러졌었고, 미군을 비롯한 연합군의 개입으로 휴전이라는 형태로나마 그들의 침략의도를 저지하는데 성공한 것은 20세기후반기의 세계사를 기록함에 있어 획기적인 것으로 명기되어야 할 사건이다. 그러나 공산주의자들의 교묘한 평화선전 공세 때문에 미국을 비롯한 자유국가들 가운데서도 그들의 군사개입 행동이 과연 정당한가를 의문으로 생각하는 시민이 많았던 데다 군사작전의 제한성과 그 정체·장기화는 미국 자체내의 국론을 사분오열 시켰다. 월남전쟁에 대한 과중한 부담 때문에 세계적인 책임을 포기해야한다는 세 론이 유력해졌고, 이러한 세 론의 압력 때문에 결국「닉슨·독트린」이 나오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월남전쟁에 발목을 잡힌 미국이 세계전략을 전개하는데 지장을 느껴 발뺌에 서두르게 된 것은 큰 유감이다.

<동남아의 중립화 기운>
그렇지만 발표된 휴전협정의 내용을 보면, 미국은 군사적인 면에서도 정치적인 면에서도 참전목적을 충분히 달성하지는 못했다. 세계 최강국인 미국이 세계공산주의자들이 교묘하게 조작한 국내외의 반전여론·평화 열에 눌려 월맹에 대한 단호한 군사행동을 감히 취하지 못했기 때문에 조금도 명예롭지 못한 휴전이 성립되고 만 것이다. 이 점 미국의 월남전쟁에서의 후퇴·철수는 군사작전상의 실패가 아니라, 공산주의를 상대로 하는 전세계적인 사상전·선전전에 있어서 능동적인 공세를 취하지 못한데 기인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미국이 월남전으로부터 해방되게된 결과는 미국으로 하여금 세계전략을 새로 입안·실천하는데 있어서 여유를 갖게 할 것이요, 미-중공간 국교정상화 작업을 촉진한 것임을 유의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인지반도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의 감소는 71년 내에 싹트기 시작한 동남아 5개국의「평화·중립화」경향에 박차를 가한 것이요, 이것이 나아가서는 동 「아시아」 정세 전체에 큰 영향을 주게 될 것이다.
아마도 미국은 월남전쟁에서 실추된 위신을 되찾기 위해서 아니, 그보다는 동「아시아」에 있어서 4강간의 세력균형을 이루어 4강 체제하 신질서를 형성하기 위해서 인지반도 외 지역에 있어서는「닉슨·독트린」의 집행속도를 늦출 공산도 없지 않다.
미국이 세계적인 책임의 감소를 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맹 방에 대한 공약을 지키겠다는 것은 며칠 전에 발표된「닉슨」대통령의 취임사에서도 명백히 밝혀진 바 있다. 그러나 월남휴전 성립 후 미국이 동「아시아」에 있는 맹 방에 대해서 지겠다는 책임의 한계가 무엇인가, 우리로서 주시치 않을 수 없다.

<월남전에서 얻은 교훈>
월남전쟁은 공산침략의 위협에 직면하고 있는「아시아」제국들에 귀중한 교훈을 남겼다. 그것은 무엇인가? 강대국이 아무리 군사개입을 하여 공산침략자를 응징하는데 앞장선다 하더라도, 강대국의 도움을 받는 나라 자체가 공산주의의 침략과 침투를 기필 저지하겠다는 굳은 의지와 능력을 못 가지고 있는 한, 그 나라는 결코 안전하게 살아남지 못한다는 것이다. 우리 정부는 이제 즉각 철수를 개시키로 되어있는 파월 국군의 신속하고, 안전한 귀국을 보장하기 위해 세밀한 대책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