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이시습하는 방학생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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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겨울방학이 왔다. 그러나 적어도 신문을 보고, 신문 사설을 읽는 대학생들의 경우엔 올 따라 겨울방학이 왔다는 말이 별로 실감이 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올해에는 겨울에 앞서 이미 사실상의 방학이 있었기 때문이다. 10월의 휴교령이 11월말에 가서 풀리기는 했으나, 바로 기말고사에 쫓기다 보니 개학후의 2, 3주일은 쏜살같이 흘러버렸고, 그러다 보니 책보를 펼치자마자 또 방학인 셈이 되어버렸다.
더러는 이처럼 정상적인 수업을 갖지 못한 학생생활을 불우한 것이라고 비관하는 학생들도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오늘의 대학생들에 앞서는 학부모들의 학생시대에 역시 그들이 어떠한 대학생활을 했었던가를 따져 묻는다면 그 어느 시대에도 정상적이기만 했던, 온전한 대학생활을 영위할 수 있던 세대는 오히려 예외였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 사실을 통해서도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가 얼마나 격동의 시대인가를 새삼 느끼게 된다. 대학 4년 동안에 아무 일없이 무사히 수업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은 오히려 예외요, 어떠한 기연에서건 학교 문이 닫히거나 수업이 단축되는 일 등이 관례가 되어버렸던 것이다. 역설적으로 얘기한다면 4년 동안을 정상적으로 수업을 할 수 있었다면 그것이 비정상적인 것이요, 엉뚱하게도 이런 저런 일로 비정상적인 대학생활을 마치고 나오는 것이 도리어 정상이 되어버렸다고 조차 할 수 있다.
이러한 현실은 오늘의 대학생들에게는 다음과 같은 교훈을 준다. 즉 대학의 학구생활은 강의실 수업의 정상여부를 초월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공부한다는 것이 학교 문이 열리고 닫히고 하는데에 좌우되어서는 안되겠다는 얘기이다.
그리고 어쩌면 이 엄연한 진리는 적어도 대학의 학구생활에 관한 한, 예부터 변함없는 것이었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달리 말한다면 학교수업이 비정상화하게 되는 경우가 많을수록 대학생들 자신의 학업에의 「이니셔티브」는 열띠고 높아져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스스로 학이시습하는 습관을 기르는 것만이 대학생들의 학구생활에 관한 부역의 진리임을 말해 준다.
결국 격동하는 사회 속에서 어려운 여건에 놓인 어려운 시대의 대학생이란 휴교에도 불구하고 공부하는 대학생, 휴교에 강한 대학생이라야 된다. 그것은 또한 방학에 강한 대학생이라고 할 수도 있다.
방학이 특히 대학생에 있어서 책을 놓는 때가 아니라 하는 더욱 절실하고 더욱 현실적인 이유는 바로 방학 아닌 학기 중에도 방학이 있었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다.
방학에 강한, 학구에의 「이니셔티브」가 높은, 스스로 학이시습하는 학생들에게 있어서는 겨울방학은 오히려 좋은 「찬스」라고까지도 말할 수 있다.
산으로 바다로 내 치닫는 여름방학과는 또 달리, 차가운 겨울은 사람들을 집안에 있게 해준다. 겨울은 공부하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내공의 계절이라고 할 수 있다. 겨울은 사상의 계절이요, 침잠의 계절이다.
그리고 겨울 방학은 길어서 좋다. 방학에 약한 학생들에게는 지루하고 비생산적인 동면의 겨울이 되겠지만 방학에 강한 학생들에게는 무엇인가 묵직한 것, 알찬 것을 궁리하고 여물게 하기 흡족한 긴 동안이다.
동토 속에서 새봄을 알리는 보리의 눈이 트는 것처럼 겨울방학을 지하수와 같이 흐르는 꾸준한 사고와 학구적 태도의 지속으로써 나라의 새봄을 알리는 묘판이 되게 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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