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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선택제 일자리, 대기업에 달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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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박영범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원장
한성대 교수

지난달 26일에 열린 ‘시간선택제 일자리 채용박람회’에 3만5000여 명의 구직자들이 몰렸다고 한다. 육아부담으로 직장을 떠났으나 일을 다시 시작하기를 원하는 여성인력들의 구직 열기가 매우 뜨거웠다고 한다.

 박근혜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시간선택제 일자리는 고용이 안정되고, 차별이 없으며, 4대 보험 등 기본적인 근로조건이 충족된다. 여성이 육아 부담을 질 수밖에 없는 사회구조 하에서는 여성 근로자에게 매우 반가운 소식이다. 그러나 노동계에서 새로운 비정규직 직군을 양산하는 제도라고 반대하고 있다. 정부가 시간선택제 교사 등도 공공부문에 1만6500명을 채용하기로 한 것에 대해 전교조·교총 등도 교육현장에 혼란을 줄 것을 우려해 반대하고 있다. 특히 이명박정부 때 채용된 학교의 영어전담강사들과 같이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 대규모 계약해지 사태로 발전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현재 183만 명의 시간제 근로자가 있는데, 임시일용직이 90% 이상이고 80% 이상이 30인 미만 기업 근로자여서 고용이 불안정하고 처우가 열악하다. 임금수준은 전체 근로자 대비 73%, 사회보험가입률도 30%대다. 시간선택제 일자리를 현재의 시간제 일자리로 인식하면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시간선택제 일자리는 우리나라 노동시장을 선진화시키고 고용률 70%를 달성해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를 여는 단초를 제공할 수 있는 제도다.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특징 중 하나가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가 다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에 비해 저조하다는 것이다. 2011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여성고용률은 53.1%로 OECD 평균 69.1%보다 훨씬 낮다. 시간선택제 일자리는 많은 여성이 육아에 많은 시간을 쏟아 부어야 하는 시기에도 일을 계속해 뒤처지지 않고 자신의 역량을 축적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시간선택제 일자리가 정년연장 근로자에게 적용된다면 정년연장으로 기존의 일자리가 유지됨에도 불구하고 여유분의 급여로 청년을 새로 채용할 수 있기 때문에 시간선택제 일자리는 청년 일자리를 위협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촉진시키는 효과를 가져 올 수 있다.

 박근혜정부는 시간선택제 일자리를 임기 중에 93만 개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고 관련법이나 제도를 정비하고 있다. 그러나 일자리를 만드는 것은 기업이기 때문에 정부가 아무리 노력을 해도 한계가 있다는 것이 외환위기 이후 우리의 경험이다. 정부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기업, 특히 대기업들이 시간선택제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야 한다. 외환위기 이후 대기업에서 채용하는 일자리의 전체 수준은 외환위기 이전보다 오히려 줄어들었다. 전일제 정규직의 채용을 늘리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대안으로 고용이 보장되는 시간선택제 일자리를 많이 늘리는 것도 좋다. 노사정이 합심해 시간선택제 일자리가 기존의 시간제 일자리로 전락하지 않고, 여성·고령근로자 및 청년들에게 희망을 주는 제도로 발전되도록 해야 한다.

박영범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원장 한성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