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업도 무노동·무임금 … 기간 비례해 급여 삭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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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태업(怠業)’도 쟁의행위의 일종인 만큼 ‘무노동 무임금’ 원칙이 적용돼야 한다는 대법원의 첫 판결이 나왔다.

 비타민C 제제 ‘레모나’로 유명한 경남제약 노조는 2007년 회사가 HS바이오팜에 인수되자 새 경영진과 단체교섭을 벌였다. 경남제약 노조가 속한 금속노조 충남지부는 향후 10년 동안 ‘회사 재매각 금지’ ‘해고 금지’ 등의 요구사항을 내걸었다. 노사 협상은 결렬됐고 노조는 같은 해 7월부터 39일 동안 ‘고품질 운동’이라는 명목으로 하루 1.8~8시간씩 태업을 벌였다. 작업장에 나와 있지만 정상적인 생산량을 채우지 않았다. 사측이 직장폐쇄를 단행하자 노조원들은 사업장을 점거하고 비노조원, 용역 직원들과 물리적 충돌을 빚었다. 이듬해 4월 직장폐쇄가 끝난 뒤 회사는 노조원들에게 태업에 참가한 시간에 따라 삭감한 임금을 지급했다. 유급휴무일에 대해서도 태업 참가시간에 비례해 임금을 깎았다. 강모(37)씨 등 금속노조 경남제약지부 조합원 57명은 “근로 제공을 전면적으로 거부하는 파업과 달리 불완전한 근로를 제공하는 태업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에 규정된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적용할 수 없다”며 회사를 상대로 임금청구소송을 냈다.

 대법원2부(주심 이상훈 대법관)는 이 소송의 상고심에서 원고패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9일 밝혔다. 지금까지 노조 파업이나 사측의 직장폐쇄와 관련된 대법원 판례는 여러 차례 있었으나 태업을 무노동 무임금 원칙이 적용되는 쟁의행위로 봐야 할지에 대해 대법원이 판단한 건 처음이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근로를 불완전하게 제공하는 형태의 쟁의행위인 태업도 근로제공이 일부 정지되는 것”이라며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에 규정된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적용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이어 “사측이 태업기간만큼의 임금을 삭감한 게 맞다고 본 원심은 정당하며 노조 전임자에 대해서도 태업기간에 비례해 급여를 삭감한 사측의 행위는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태업으로 인해 일반조합원의 임금이 삭감되는 이상, 노조 전임자도 급여의 감액을 피할 수 없다”고 밝혔다.

 또 “태업으로 일반조합원의 임금을 일부 받지 못하게 된 마당에 조합간부인 전임자들이 자신들의 급여만은 전액 지급받겠다고 하는 것은 정당성이 인정될 수 없다”고 덧붙였다.

 대법원은 ‘유급휴무일에 대해서도 태업시간에 비례해 임금을 삭감한 것은 부당하다’는 노조의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근로의 제공 없이도 임금을 지급하는 유급휴일의 규정은 평상적인 근로관계가 전제돼 있는 것”이라며 “근로자는 태업기간에 포함된 유급휴일의 임금 지급 역시 요구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동현 기자

◆파업=노동조건의 유지 및 개선을 위해 근로자들이 집단적으로, 한꺼번에 조업을 중지하는 쟁의행위의 일종

◆태업=조업에는 참여하지만 의도적으로 일을 게을리해 사용자에게 손해를 주는 쟁의행위의 일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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