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사 20만원고료 「새마을 수기」당선작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우리 마을은 이름이 밤나뭇골 입니다. 밤나무가 많다는 연유로 해서 그렇게 예로부터 불러오는가 봅니다. 이러한 우리 밤나뭇골을 외처 사람들은 「동화의 마을」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정스럽고 아름다운 마을이란 뜻이겠지요.
1백호 남짓한 크고 작은 초가들이 다정하게 옹기종기 모여있는 이 밤나뭇골은 이름 그대로 마을을 둘러싼 주위의 산은 물론 제방·개울가·집 주위 할 것 없이 장성한 밤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차 있어서 특히 나뭇잎 무성한 여름철 같은 때는 마을이 온통 밤나무에 푹 파묻혀 버리고 보이는 것이란 오직 밤나무 천지입니다. 마치 대규모적으로 경영하는 밤나무 과수원을 연상케 한답니다.
우리 밤나뭇골에서 해마다 가을에 수확하는 밤이 보통 40섬이나 되기 때문에 상당한 소득도 얻고 있으며, 또한 이 소득도 소득이려니와, 밤꽃이 필 무렵이 되면 밤꽃이 풍기는 아련하고 짙은 향기가 사방을 뒤덮어서 흡사 값비싼 향수로 목욕을 하는 듯한 착각마저 일으키게 합니다. 밤에서 얻는 막대한 소득과 우아한 밤꽃 향기로 이 밤나뭇골은 살이 쪄가고 다른 동네에 비해서 한결 부유한 생활을 하고 있읍니다. 또한 밤나무 숲으로 인해 겨울에는 방풍이 되어 마을이 훈훈하며, 여름에는 곳곳마다 그늘이 되어 시원하고 향기가 풍기며, 장마가 져도 홍수가 나지 않읍니다. 또 아이들도 즐겁게 밤나무사이로 숨바꼭질을 하며 노는 그야말로 동화의 세계입니다.
오늘날 밤나뭇골이 이러한 「동화의 세계」로 면모를 갖추게 된데는 20년 전부터 우리동민 모두의 피나는 노력이 숨어 있음을 밝히지 않을 수 없읍니다.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꼭 20년 전입니다. 1952년3월8일. 이날은 내가 이 밤나뭇골로 시집을 온 날입니다. 갓 스무살 때였지요. 한데 이 마을은 아주 가난했읍니다. 동네는 커서 지금이나 그때나 1백여호 가량 되지만, 춘궁기에 절량을 면할 수 있는 농가는 대 여섯 집 밖에는 안 된다고 합니다. 본래 토지가 없는 마을이었읍니다. 나의 시댁도 예외는 아니어서 새댁인 내가 산나물을 뜯어다 죽을 끓여먹어야 할 정도였읍니다. 나의 남편은 성실한 농군이었으나 땅이 없고 보니 별 수가 없었읍니다.
한데 나는 이 마을의 밤나뭇골이라는 이름이 이상했읍니다. 밤나뭇골이라면 밤나무가 울창하게 둘러싸인 마을로 연상했었는데 시집을 와보니 황토 흙지대와 민등산 뿐이며 밤나무는 커녕 잡나무 하나 없는 메마른 마을이었읍니다. 나는 이 마을이 밤나뭇골이라는 이름을 갖게된 연유를 상세히 알고 싶어했읍니다. 마을이름이 될 만큼 밤나무가 이 마을과 어떤 특별한 연관이 있을 듯 싶은 흔적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시아버지가 말씀해주시는 설명을 듣고서야 납득이 갔읍니다.
일정 때는 이 마을이 밤나뭇골이란 이름에 어울리게끔 밤나무가 울창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던 것이 해방이 되면서부터는 함부로 베어대기 시작하여 불과 7년만에 깡그리 나무뿌리마저 도끼로 쪼개다 땠다는 것입니다. 일정 때에 밤나무와 벚꽃나무를 몇 가지 꺾고는 그만 일본순사한테 맞은 사람들이 해방이 되자 축적되었던 울분이 폭발하여 앙갚음이나 하듯 나무를 베어 버렸는지도 모른다고 말씀하시면서, 그러나 그게 얼마나 어리석은 짓이냐고 한탄하셨읍니다. 남편 역시 마찬가지 의견이었읍니다.
나는 마을 뒷산에 올라가 산나물을 뜯으면서 가난에 시달리고 생활에 쪼들리는 마을을 내려다볼 때 측은한 생각이 들었읍니다. 또한 무기력한 내 자신이 한스럽기도 했읍니다. 이렇게 얼마동안을 시름없이 마을을 내려다보며 산나물을 뜯던 나는 무슨 좋은 생각이나 어떤 방도가 없을까하고 골몰히 생각해 봤읍니다.

<밤나무가 없는 밤나뭇골이라…이것을 밤나무가 있는 밤나뭇골로 만들 수는 없을까? 가만있자…음, 그렇지! 있어야 명실상부한 밤나뭇골이 될 수 있지. 아니 그도 그렇거니와, 밤을 많이 수확해서 내다 팔면 그것이 곧 곡식이 되고 돈도 것이 아닌가! 또 비단 그뿐이랴, 밤나무를 산이나 제방에 모두 심으면 산도 좋아지고 둑도 튼튼해 질 아닌가? 그런데도 왜 동네사람들은 그런 생각들을 여태 못했단 말인가. 심자. 이것만이 가난한 이 밤나뭇골을 부강하게 할 단 하나의 길이다.>
여기에 생각이 미치자 나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나물을 뜯으면서도 실성한 사람처럼 혼자 미소지어 보았읍니다.
집에 돌아온 나는 저녁에 잠자리에서 남편에게 나의 생각을 말하면서 우선 우리 밭에라도 밤나무를 총총히 심으면 어떠냐고 의견을 물었읍니다. 그러자 남편은 물론 좋은 일이라고 말하며 자기도 전부터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고 말했읍니다. 그러면 밤나무든 무슨 과일나무든 심으려면 동네사람 전체가 다같이 심고 가꾸어야지 어느 한집에서만 가꾼들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즉 개별적으로 심고 가꾸면 나무도 부지할 수가 없고 밤이 열린다 해도 함부로 따가기 때문에 숫제 심을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다못해 참외나 수박을 심어도 원두막을 짓고 지켜야만 하는 판에 밤나무를 누구 좋은 일하자고 심느냐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심으려면 온 마을사람이 모두 협동해서 다같이 심는다면 서로가 모두 주인이기 때문에 서로 지키고 가꿀테니까 그렇게나 심으면 지탱할테지만 협동의 실천이 안되어 못한다는 것입니다. 얘길 듣고 보니 그럴 것도 같았읍니다. 하긴 가난한 마을에서 혼자 밤나무를 가꾸어 잘 살수는 없을 것입니다. 아무리 법과 인정이 있다해도 굶주림을 당하지는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함부로 밤을 따간다면 그걸 어쩔 것인가 말입니다. 결국은 천상 다같이 잘 살아야 피차 불안한 마음 쓰임이 없이 편안히 행복하게 살수가 있을 것입니다.
나는 남편에게 그럼 온 동네 사람이 모두 함께 뭉쳐서 밤나무를 심어 가꾸어 보도록 자꾸만 졸랐읍니다. 나는 이런 얘기를 시아버지께도 말씀드렸읍니다. 나의 얘기를 들은 시아버지는 참으로 좋은 생각이라면서 우리가 먼저 앞장서서 한번 나무심기운동을 해보자고 의외로 찬성을 하시며 적극 나섰읍니다. 시아버지는 이 마을에서 이장을 보고 계실 뿐 아니라 한문학에 조예가 깊고, 이 마을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계신 분입니다. 시아버님은 나의 의견제안으로 인해서 자신도 살아생전에 좋은 일을 한번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면서 적극적으로 나섰읍니다. 이래서 남편과 나, 시아버님, 이렇게 셋이서 밤나뭇골을 가꾸자는 뜻이 합치되자 바로 실천에 옮겼읍니다.
우리는 우선 종자로 쓸 수 있는 많은 수량의 품종 좋은 밤을 사재를 털어서 사들여 가지고는 온상을 만들고 모를 부었읍니다. 그리고는 거름을 잘하고 물을 적당히 주는 등 정성껏 가꾸었읍니다. 그 보람이 있어서 이듬해 봄에는 만여주에 달하는 묘목을 만들어 내는데 성공했읍니다. 식목철이 되자 시아버님은 마을사람들을 우리 집에 모아놓고 술을 대접하며 이렇게 말했읍니다.
『여러분! 우리 밤나뭇골은 너무도 가난하게 살았읍니다. 이제는 우리도 좀더 잘살 수 있는 길을 연구해야 합니다. 좁은 농토에만 전적으로 의지하고서는 도저히 가난을 면하지 못할 것이니 농토가 아닌 다른 것을 부업으로 소득을 많이 얻어야만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한가지 궁리를 해봤읍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이 마을에 많은 밤나무를 심어서 잘 가꾸자는 것입니다. 밤을 다량으로 수확하면 그것이 곧 우리에게 필요한 돈과 곡식이 되기 때문에 가난한 우리 살림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또한 밤나무를 심으면 산은 좋아지고 둑도 튼튼해지며 그 외 여러 가지 좋은 점이 많을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마을이 한 덩어리가 되어 밤나무를 심어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정성껏 가꿉시다. 여러분 밤나무묘목은 우리가 길렀읍니다. 이것을 여러분에게 나누어 드리겠으니 산이나 들이나 둑, 또는 놀고있는 공지, 집 주위 할 것 없이 밤나무가 자랄 수 있는 적당한 곳이면 어디든지 심어 가꾸어 주십시오. 간곡한 부탁입니다.』
시아버님은 자신의 집착한 바를 이렇게 자세히 열의 있게 설명하시고는 준비한 묘목을 한 묶음씩 나누어주었읍니다.
그러나 우리는 실망했읍니다. 술을 마시며 시아버님의 구상을 들을 때는 그럴 듯이 여기고는 묘목을 들고 돌아간 마을사람들은 대부분 그 알뜰하게 공을 들인 밤나무묘목을 심어 가꾸기는커녕 그냥 누렇게 말려 내버리는 것입니다. 이렇듯 무지몽매하여 가난에서 벗어나려는 자체적인 노력을 싫어하는 마을 사람들을 볼 때 우리는 분개도 하고 탄식도 했으나 그러면 그럴수록 우리는 마을을 위한 밤나무녹화 계획을 버리지 않고 이번에는 품꾼을 사서 내 산 네 산, 내 땅 네 땅 할 것 없이 적당한 곳이면 모두 밤나무를 심어나갔읍니다.
그러나 여기에도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읍니다. 다름아니라 왜 함부로 내 산 내 땅에다 밤나무를 심느냐고 땅임자들의 성화같은 항의가 쏟아져 나오는 것입니다. 이에 더해 우리는 심기는 우리가 심더라도 모든 밤나무는 우리 마을의 공동소유로 하겠으니 걱정 말라고 이해시키러 애썼지만 의심 많은 마을사람들은 우리가 돈을 들여서까지 남의 땅에다 거저 밤나무를 심어 줄리 없으니 우리가 필시 우리 이득을 꾀하는 수작임이 틀림없다고 엉뚱한 의혹마저 품으며 완강히 거절하기까지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굳은 의지를 가진 우리는 사필귀정의 확고부동한 신념아래 그 뜻을 조금도 굽히지 않고 눈물로 호소하며 밤나무를 심어갔읍니다. 이렇게 하기를 몇 년간에 걸쳐 심은 밤나무는 수만주에 달했으며 차차 해가 갈수록 우리마을은 산이나 둑·개천가·공지·집 주위 할 것 없이 온통 밤나무 투성이가 되고 말았읍니다. 눈물겹도록 대견스러웠읍니다.
이렇게 되니 마을 사람들도 자연 우리가 하는 일을 전과 같이 그저 범연하게 지나쳐 버리지 않고 점차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으며 누구의 입에서부터 비롯된 말인지 나에겐 「밤나무 며느리」란 별명을 붙여 부르고 시아버님은 「밤나무 참봉」이라고 별명을 붙이기도 했읍니다. 그런데 밤나무는 수없이 늘어갔으나 한편 우리 집안의 경제적 형편은 기울어져 갔읍니다.
밤나무 묘목을 길러 심느라고 계속 연년이 사재를 지출하다보니 그럴 수밖에 없었읍니다. 그러나 우리식구는 누구 한사람 후회를 하거나 불만하는 사람은 없읍니다. 연년이 더욱 만족한 보람과 행복을 느끼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지금은 비록 가난하지만 장차는 밤나무에서 몇 십 배 몇 백 배의 수익이 생기게 될 것이며 또한 우리 한집의 희생으로 백여집의 살길을 열어주게 되었다는 것은 이만저만한 큰 수확이 아니라는 큰 보람을 갖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세월이 흘러 우리의 피땀어린 계획과 노력이 드디어 그 결실을 보게될 때가 온 것입니다. 마을의 안산·제방·황무지·집 주변 할 것 없이 총총히 들어서 있는 밤나무가 울창하게 자라서 가을이 되자 소담스런 밤송이가 나뭇가지마다 휘어지도록 수없이 매달렸읍니다. 산이고 들이고 가는 곳마다 기름기 도는 알밤이 쏟아지고 걷는 발부리마다 주먹만한 알밤이 뒹굴었읍니다. 밤을 수확하기 위해 분주한 어느 날 시아버님은 마을사람들을 모아놓고 흐뭇한 마음으로 만면에 웃음을 띄우며 조용히 말했읍니다.
『여러분! 여러분들이 몇 해를 두고 애써 가꾼 보람이 있어서 오늘날 이렇게 많은 밤을 우리마을에서 수확하게 되었읍니다. 그러나 이 밤나무는 우리 한집의 것도 아니며 또 어느 누구개인의 것도 아닙니다. 오직 우리마을 전체가 주인이며 모든 사람들의 것입니다. 밤나무를 누가 심었건 밤나무가 누구네 땅에 있건 이 밤나뭇골에 살고있는 우리들 모두의 것입니다. 앞으로도 우리는 서로가 이 밤나무들을 잘 가꾸고 건사해서 여기에서 얻은 소득은 가난한 우리 살림에 보태 써야만 하겠읍니다. 여러분! 밤나무를 서로 아끼고 지키는 것은 말할 것도 없으며 앞으로도 더욱 묘목을 만들어서 동네 밖에까지 심어 나가도록 힘써 주십시오. 부탁입니다.』
이때야 비로소 마을사람들은 갖은 역경과 난관을 무릅쓰고 밤나무를 심어온 우리의 참뜻을 이해하고 밤에서 얻은 수입이 살림에 크게 도움이 되는 것을 눈으로 보고서야 마을을 위해서 가산을 탕진해가며 밤나무를 심어온 우리에게 감사하는 표정이었읍니다.
그러나 마을사람들이 시아버님의 큰 뜻을 이해하고 그 고마움을 알게된 때는 시아버님은 이미 노환으로 신음하고 계시게 되었읍니다. 나 역시 새댁시절이던 20대에서 20년이 지난 오늘 40대의 중년아낙네로 변했읍니다.
이제는 마을사람 모두가 밤나무에 대한 관심이 우리 못지 않게 대단해진 것입니다. 시아버님은 마을사람들의 애도 속에서 숨막히도록 총총 들어차 있는 밤나무들을 바라보시며 78세를 일기로 보람된 일생을 마치셨읍니다. 마지막 숨을 거두실 때까지도 밤나무를 더욱 아끼고 많이 심어나가라는 유언을 하셨읍니다.
장례식에 참석한 음성군 농촌지도소장은 추도사를 하시는 가운데 이렇게 말했읍니다.
『여러분! 우리 나라의 땅은 개척하고 가꾸기만 하면 그대로 지상낙원이 될 수 있는 세계적으로도 가장 여건이 좋은 아름다운 기후풍토를 가졌읍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자연을 외면하고 있읍니다. 오늘날 이 밤나뭇골을 이렇게 가꾸듯이 우리 나라가 온 마을을 모두 이렇게 가꾼다면 불과 몇 해 안 가서 돈이 열리는 유실수가 전 국토를 덮게 될 것이며 「덴마크」보다도 훨씬 부강하고 아름다운 푸른 동화의 나라가 될 것입니다.』
지금은 완전히 밤나뭇골의 면모를 갖추고 밤나무와 더불어 생활하는 이 밤나뭇골 사람들은 누구나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밤나무를 아끼고 사랑하며 제일 소중하게 여기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습관은 적어도 우리마을의 법칙이요, 인정이 된 것입니다. <끝>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