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무기는 수첩·연필 … 디자인 메모 습관이 재기 발판 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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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물건이 넘치는 시대다. 비슷비슷한 물건이 소비자의 선택을 받기 위해 갈수록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무기는 가격이다. 남들보다 조금 더 싸게 팔면 그만큼 팔릴 확률이 높아지니까 말이다. 하지만 소상공인에게 이런 가격 경쟁은 자칫 ‘제 살 깎아먹기’를 불러올 수 있는 위험천만한 선택이기도 하다.

 윌하우스 박상기 사장이 선택한 무기는 가격이 아니라 물건을 만드는 ‘과정 그 자체’다. 한마디로 물건 속에 녹아 있는 ‘장인정신’이다. 가죽가방·가죽벨트를 만들기까지 무두질·염색·바느질에 솜씨와 정성을 담고, 디자인을 녹여 넣는다. 그러면 소비자는 ‘박상기표 제품’이 가진 개성·정성·감성을 산다.

 이런 수작업의 감성과 차별화된 디자인이 가지는 아날로그식 경쟁력을 확보하기까지 장시간의 투자와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한번 구축하면 후발주자가 따라잡기 어려운 진입장벽으로 작용한다. 박 사장은 이런 히든카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작은 면적의 매장에서 남다른 매출을 올리는 것이다.

 여기서 눈여겨볼 대목이 있다. 박 사장이 이런 히든카드를 확보할 수 있었던 핵심 원동력, ‘기록 습관’을 벤치마킹하자. ‘적자생존’이라는 말이 있다. 원래 의미는 ‘환경에 잘 적응한 자가 살아남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박 사장의 적자생존은 ‘적는 자, 즉 기록하는 자가 살아남는다’는 뜻이다. 박 사장은 ‘디자인은 영감’이라고 생각한다. 영감은 때와 장소를 정해서 떠오르는 것이 아니기에 그는 늘 수첩과 연필을 끼고 산다. 불현듯 스치고 지나가는 영감을 놓치지 않고 기록해 두기 위해서다. 이런 메모가 세월을 거치며 쌓여서 윌하우스의 히든카드가 됐다.

 가격 대신 무형의 아날로그 경쟁력을 만들고 싶은 소상공인에게 기록 습관은 필수조건이 아닐까? 비단 디자인뿐만이 아니다. 친절 서비스, 가게 홍보, 원가 절감 등 각종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수시로 적자. 적어서 남긴다면 비록 지금 당장이 아니더라도 언젠가 그 아이디어가 필요할 날이 올 것이다.

  윌하우스를 보면서 한 가지 제안이 떠올랐다. 재료를 고르고 다듬고 한 땀 한 땀 손으로 가공하는 작업공정을 짧은 영상으로 만들어 홍보하면 어떨까? 아니면 소상공인 지원을 위한 정책과제로 추진하면 어떨까? 결국 소상공인의 궁극적인 경쟁무기는 가격이 아니라 물건에 담긴 ‘과정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김진혁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중앙일보·삼성경제연구소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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