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릴린·몬로의 증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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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이상한 일이다.
「마릴린·몬로」가 지금 미국에서 갑자기 되살아나고 있다. 그녀가 죽은지 꼭 10주년 째이기 때문에서만은 아니다.
그녀가「그레타·가르보르」처럼 신비스러움을 안고 있었다거나 절세의 가인이었기 때문도 아니다. 오히려 백치미를 연상시켜 주던 그녀였다.
그런 그녀가 시인이었음은 극히 최근에야 밝혀진 사실이다.
그것도 아주 풋나기 시인은 아니었던 것 같다.
『거미줄보다도 가느다란 나의 삶은 거센 비바람에도 저렇게 걸려 있구나. 방황하며 배회하며 허공에 대롱거리며 가랑잎 휘날리듯 이끌려 사네….』이런 시를 생각해 낼 수 있는「몬로」라든가, 또는 『나는 짙푸른 나무들의 숲과 벨벳의 잔디가 깔린 내 고향을 떠나왔건만 나는 아직도 고향집 문 앞에 두고 온 파란 잡초들을 꿈꾸고 있네.』
하고 노래할 수 있던 그녀를 그녀의 천진스러운 표정에서 아무도 찾아내지는 못했던 것이다.
어쨌든 그녀는 단순한「섹스·심벌」인 만은 아니었던 게 분명하다. 「아더·밀러」로 하여금 결혼을 하게 하고 대통령인「케네디」가 그녀와의 염문을 날리게 한 뒤에는 무엇인가가 따로 있었을 것이다.
여자에게 있어서는 아름다움은 그 자체가 미덕이 된다. 그러나 「몬로」의「리바이벌·붐」이 일어난 것은 뭣인가 그녀가 한 시대를 상미하고 있는 듯이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그녀의 죽음이 무엇보다도 사람들의 마음을 서글프게 해주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서구 사람들은 모든 것이 강렬하다. 살 때나 죽을 때나 몹시 강렬하다. 그만큼 삶에 대한 집착이 강렬하기 때문이라고 할까.
『도와주세요, 도와주세요. 나는 죽음만을 바라고 있는데 삶이 더욱 다가오고 있는군요.』
이렇게「몬로」자신도 노래했었다. 몹시 나 살고 싶었을 것이다. 그게 뜻대로 되지 않아서 괴로워하고 죽음을 재촉했을 것이다.
서양 사람들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은 하고 싶은 일, 즐거운 일이 인생에는 너무나 많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런 인생을 역겨워 했기 때문에 「몬로」의 죽음이 그처럼 인상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몬로」를 둘러싼 세계가 너무 추악하기만 했던 것이다.
그것을 이제야 뼈저리게 느끼게 된 것인가 보다. 그리고 순진하게 살아 갈 수 없다는 것을 「몬로」가 마지막으로 증언해 주었다고 볼 수도 있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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