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극을 보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당신이 날보고 왜 사느냐고 묻는 다면 요런 재미에 산다고 말하겠어요.』
주인 없는 새에 집을 지키는 식모애가 주인아줌마의 옷장 속에서 옷을 하나씩 꺼내 입고 관객 없는(하지만 무수한 관객 있는) 「패션·쇼」를 연출하며 곡조도 맞지 않는 가락을 내뽑고 있었다.
난 후딱 같이 앉아 TV를 보던 우리 집순이의 얼굴을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 집에 와서 몇 년 동안 정이 들어 버린 순이. 때로는 답답한 점도 없진 않지만 뭣 보다 정직하고 마음만은 착하기 이를데 없어, 내가 진심으로 귀엽게 여기는 아이다.
아기가 둘이 되고 또 네가 직장이라고 나가는 날이 많아지니 살림하는 사람을 두는게 우리 집에선 어쩔 수 없는 「필요악」이 되어 있는데, 순이 처럼 착한 애가 한 식구가 되어, 이 점만은 내 생활에서 「해결」되었다고 감사히 여기고 있는 터다.
이 순이가 가장 좋아하는 TV보는 시간에 마땅찮은 장면이 곧잘 튀어 나와서 내심 난처할 때가 많다.
주인의 화장품을 몰래 찍어 바르는 장면. 뚱뚱한 몸집이 그래도 부족한지 주인 몰래 급하게 입이 터져라 뭘 쑤셔 넣는 꼴불견의 장면. 왜 TV속에 나오는 식모의 「타인」은 하나같이 떳떳치 못하고 일부러 라도 좀 못생긴데다가 유행가를 불러도 음치의 흉내를 내게끔 만들어 놓는 것일까.
조금씩은 불행한 요소를 타고나서 내 집을 떠나 남의 집에 사는 애들. 그것을 하나의 「직업」으로 알고 올바른 한계와 자긍을 갖기에는 너무나 분별이 부족하고 열등감에 짓눌린 대부분의 애들.
왜 이 가엾은 애들의 아픈 구석을 굳이 오락의 대장으로 확대해 드러내 보일 필요가 있을까?
이런 장면이 나올 때마다 난 맘이 무거워 진다. 영리하고 착한 많은 순이들의 제나름대로의 자존심에 가느다랗게 라도 금이 가지 않을까. 올바르게 살려고 애쓰는 그 애들의 맘속에도 못된 유혹이 고개를 쳐들지 않을까.
비단 「식모」뿐만이 아니겠지만, 이런 유의 결코 유익할 수 없는 고정 관념을 「매스컴」을 이끄는 담당자들은 어서 깨뜨려 주었으면 좋겠다. 【김민자<서울 여의도「아파트」22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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