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영희 칼럼

철 지난 북풍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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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
김영희 기자 중앙일보 고문
김영희
국제문제 대기자

국정원이 흘린 장성택 실각설을 놓고 북한 전문가들과 국내외 언론들이 다양한 해석을 풀어놓고 있다. 무성한 의견을 난립시킨 것은 여야가 합의한 국회의 국정원 개혁 분위기에서 국민의 관심을 돌리고 싶은 국정원과 카메라의 플래시를 받고 싶은 야당 정치인이다. 공개된 내용의 요지는 장성택이 권력투쟁에서 밀려 측근 둘이 공개처형되고 장성택 본인은 실각한 것 같다는 것이다. 국정원이 느닷없이 국회 정보위를 찾아가서 브리핑을 하고 국회의원이 그걸 기자들에게 밝힌 과정이 석연치가 않다.

 국정원은 장성택 실각의 내용과 강도를 빼고 불쑥 공개했다. 사려보다 공명심이 앞선 국회의원은 북한 전문가에게 전화를 걸어 “장성택이 총정치국장 최용해와의 권력투쟁에서 밀린 것 같다”는 논평만 듣고 기자들에게 발표를 했다. 장성택 실각설의 이런 과정을 홀로 보도한 중앙일보 하선영 기자는 국정원의 ‘꼼수’ 같다고 썼다. 날카로운 안목이다. 그러나 국정원의 행동은 꼼수를 넘어 북풍을 닮았다.

 장성택이 실각했다면 큰 사건이다. 사실이라면 국정원은 사건의 전후 맥락을 함께 밝혀 혼선을 피하거나 최소화했어야 한다. 간단히 실각이라고 해도 그 원인은 비리-전횡-권력남용 등 그 범위가 넓고 거기 따라 장성택이 받았을 처벌의 내용도 가택연금과 근신, 직책을 박탈하는 삭탈관직에서 숙청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우리가 주목할 점은 장성택이 많은 전문가들의 말처럼 최용해 또는 군부와의 권력투쟁에서 밀린 것인가, 아니면 더 넓고 높은 차원의 노선투쟁인가, 장성택의 제거가 김정은의 권력구조에 영향을 줄 것인가, 그래서 우리의 안보 환경을 흔들어 놓을 것인가 등이다.

 2000년과 2007년 남북정상회담 기획에 직접 참여하고 두 대통령의 평양 방문을 수행한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은 권력투쟁설을 일축했다. “김정은이 핫바지가 아닌 한 북한 사회에서는 권력투쟁은 있을 수 없어요. 경제정책에 관한 투쟁에서 장성택이 밀렸다는 추측도 설득력이 없습니다.” 장성택은 김정일 이래의 선군 정책을 조정하면서 군부가 독점하고 있던 외화벌이의 이권을 당과 정부로 넘기는 개혁을 주도한 사람으로 알려졌다. 군부로 보면 외화벌이의 꿀단지를 뺏긴 것이니 장성택에 대한 반감이 있을 수는 있다. 그러나 김정은의 군부 장악과 직결된 그런 큰 결정은 김정은의 적극적인 의지가 없이 장성택 혼자 강행할 성격의 것이 아니다.

 권력투쟁이라면 승자는 그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한다. 김정은은 막 시작한 경제특구 사업에 의욕적이다. 경제는 핵과 함께 김정은 체제의 안전을 좌우하는 두 날개의 하나다. 중국의 투자가 더 들어오고 다른 나라들의 투자를 유치해야 성공할 사업들이다. 장성택이 실각하여 이런 사업들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사태라도 벌어지면 권력투쟁에서 이겨 장성택을 추방한 세력에게 책임이 돌아간다. 김정은이 장성택 처벌의 수준을 결정하는 데도 이런 요소가 고려될 것이다.

 지금은 세종연구소에서 북한문제를 추적하는 이종석 전 장관은 정부가 장성택 사태를 우리 안보에 영향을 줄 수준이라고 판단했다면 이렇게 조용할 수가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장성택이 노선투쟁에서 밀린 것이 아니고 또 북한이 지금 같은 경제정책을 추구하는 한 그들의 대남정책에는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진단이다. 그가 두 번 만나본 인상으로는 장성택은 윗사람에게 달려드는 스타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왜 그의 핵심 측근 두 명이 처형됐다는 것인가? “아랫사람들이 장성택의 힘을 믿고 당 중앙처럼 행세하고 권력을 남용하면서 비리를 저질렀을 수 있겠지요.”

 정부도 하루 사이에 톤을 낮췄다. 긴급 안보장관회의 같은 것도 열리지 않고 박근혜 대통령도 북한 사태에는 언급이 없다. 중국 정부도 아는 게 없다면서 관심을 갖고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고만 했다. 통일부 장관의 말은 갈팡질팡이다. 국회에 나가서는 장성택의 소재를 알고 있지만 밝힐 수는 없다고 말했다가 나중에는 그런 뜻이 아니라고 물러섰다. 대북정책 주무부서인 통일부는 정보가 없어 국정원의 장단에 춤만 추는 초라한 모습을 보였다.

 북한문제는 언제나 민감하여 신중하게, 실증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대북 정보를 독점한 국정원은 국정원 개혁 분위기에 물타기하고 싶은 충동을 누르고 대북정책의 전체 맥락에서 충분히 검토되고 정제된 정보만 알리고, 청와대는 통일부와 국정원의 역할을 제대로 조정하고, 정치인들은 사사로운 공명심에 휘둘리지 말고 남북관계의 장래를 먼저 생각하고, 언론도 전문가들과 외국 언론의 주관적 논평을 여과 없이 중계하는 보도관행을 삼가야 한다.

김영희 국제문제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