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대남 비방 재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미국의 권위 있는 한 시사문제 전문가는 남북적십자회담과 관련하여 북한에서는 소위 경제파와 강경파간의 논쟁이 시작됐다고 보고 있다. 동 보도는 조총련의 김병식 대 한덕수의 권력투쟁보도와 지난주 북한 중앙통신의 박대통령에 대한 신랄한 공격재개가 바로 평양에서 일어난 이 같은 중요한 사태발전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보고 있는 듯 하다.
7·4공동성명이후 비교적 유연한 대남 선전을 전개하던 북한이 9·13 서울적십자회담이래 돌연 대남 비난을 재개한 것은 그 이유가 나변에 있는지 정확히는 추측할 길이 없으나 일단 북한 내에서의 경제파·강경파간의 논쟁 때문이라고 보는 것은 전연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라고 하겠다.
북한이 7· 4공동성명 또는 남북적십자 본 회담에 응하기로 한 기본적인 배경은 대체로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즉 그 하나는 세계전체의 평화지향적 전세 전개에 대응하여 그들이 추구하는 이른바 『조선혁명전략』을 평화적 방법으로 전술을 바꾼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71년도부터 시작된 6개년 경제계획과 더불어 기술혁신·중공업시설의 현대화등을 위해 자유국가와의 기술제휴는 물론, 신형 시설재 도입을 촉진하지 않고서는 북한경제가 이제 한계점에 이르렀음을 자각한데서 온 해결책이라는 것이다.
전자를 주장함은 소위 혁명파 내지 강경파라 할 수 있으며, 후자를 주장함은 경제파라고 할 수 있다. 이중 강경파가 그들의 혁명전략과 전술에 상치되는 현상을 반대함은 결코 추측하기 어렵지 않다. 강경파들은 혁명에 저해될 일절의 움직임을 한사코 반대할 것이며, 보다 구체적인 예로서 남한에 대한 비난을 재개한 것은 서울과 평양을 왕래하는 남북적십자 본 회담이 그들 혁명전술에 비추어서는 물론 그들 내부에 고민을 가져온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유엔」에서의 북한의 패배는 강경파들에 대해 남북회담이 아무 것도 가져오지 않는다고 하여 그것을 저해하는 구실을 찾았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한편 조총련의 제l부의장 김병식과 한덕수 의장간의 권력투쟁만 하더라도 김병식이 일본과 북한과의 교역·인사접촉 및 주내의 창구역할을 하고 있는 만큼 그 투쟁을 소위 경제파와 강경파간의 대립으로 보는 것도 타당할 것이다.
그러나 북한의 내부사정은 여하간에 북한이 자기들도 서명한 공동성명을 위반하면서 대남 비난을 시작했다는 것은 유감천만한 일이다. 그 비난·공격이 비판의 범위를 넘어서 날로 악의에 찬 중상·모략으로 치닫고 있는 것은 현금 진행되고 있는 남북대화의 장래에 대해서도 짙은 우려를 금치 못하게 하는 것이다.
7·4공동성명 제2항에서 상대방을 중상·비방하지 않기로 한 것은 어디까지나 남북사이의 긴장상태를 완화하고 신뢰의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서이다. 중상·비방이 계속될 때 모처럼 싹튼 대화분위기를 저해할 것은 물론 남북사이에는 보다 짙은 오해와 불신이 높아질 것이다.
북한은 이제부터라도 터무니없는 대남 비난을 즉시 중지하는 동시에 남북한의 불신과 오해를 풀고 긴장의 고조를 완화하여 대화에 성실을 다하면서 민족의 염원인 조국통일을 촉진함에 행동으로써 성의를 표시해야 할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