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시위 리더로 뜬 핵주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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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우크라이나의 반정부 시위는 3일에도 계속됐다. 13일째다. 이날도 대학생 등 수천 명이 수도 키예프 중심부의 독립광장을 지키며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했다. 이 시위의 발단은 우크라이나 정부의 유럽연합(EU)과의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중단이었다. EU 가입을 바라는 시민들의 기대가 꺾인 것이 문제였다.

 이 시위의 중심에 ‘개혁을 위한 우크라이나 민주동맹(UDAR)’이라는 제2 야당의 대표 비탈리 클리치코(42·사진)가 있다. 그는 시위 첫날부터 시민들과 함께 거리로 나왔다. 연일 “ 야누코비치 대통령과 정권은 국민의 신뢰를 잃어버렸다”고 외치며 조기 대선과 조기 총선을 요구 중이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야누코비치 정권이 붕괴될 경우 차기 지도자가 될 가능성이 큰 4명의 우크라이나 정치인을 꼽으며 그를 가장 먼저 소개했다. 로이터통신 등 다른 외신들도 친 서방 세력 집권 땐 그가 대권을 잡을 확률이 가장 크다고 보고 있다.

 클리치코는 현역 WBC 헤비급 복싱 세계 챔피언이다. 45전 43승 2패. 그중 41승이 KO승으로 역대 헤비급 챔피언 중 로키 마르시아노(1923~69년, KO 승률 87.8%)에 이어 KO 승률 2위(87.2%) 이다.

 그는 2006년 키예프 시장 선거에 뛰어들었다가 고배를 마셨다. 하지만 26%를 득표하며 유력 정치인으로 부상했다. 2010년에 UDAR을 창당해 지난해 총선에 출마했다. 그를 비롯한 40명의 후보가 당선해 UDAR은 원내 제3당이 됐다. 클리치코는 “우크라이나는 친 러시아 노선을 버리고 EU에 가입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2일에도 “만연한 부패를 청산하고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는 유럽의 국가 운영 모델을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2000년 스포츠과학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아 세계 최초의 복싱 챔피언 박사가 됐다. 그래서 별명이 ‘강철주먹 박사’다.

 클리치코는 35만 명이 거리로 나온 1일의 시위 때 몸으로 시위대와 경찰의 충돌을 막아 외신의 주목을 받았다. 과격 시위대가 대통령실 청사 앞에서 경찰과 무력 충돌을 벌이자 그가 가운데에 서서 양측을 말렸다. 1m95㎝의 거구인 그는 청년 시위자들을 향해 “돌아가서 독립광장을 사수하라”고 외쳤다. 그는 폭력 시위는 정권에 탄압의 빌미를 제공한다며 평화적 시위를 촉구했다. 로이터통신은 2004년 ‘오렌지 혁명’ 때 시위를 이끌며 지도자로 급부상한 율리아 티모셴코 전 총리처럼 그가 야권의 구심점이 되고 있다고 전했다.

 ◆내각 불신임 투표 부결=한편 야권의 상정으로 3일 의회에서 실시된 내각에 대한 불신임 투표는 통과에 필요한 226표에 40표 못 미쳐 부결됐다. 부결 직후 미콜라 아자로프 총리는 지난 주말 경찰의 강제해산 사태에 대해 거듭 사과했다. 야누코비치 대통령도 EU와의 협상 재개 움직임을 보이며 시위대 달래기에 나섰다. 그러면서도 “시위가 아닌 쿠데타 시도”라고 야권을 공격했다. 그러자 제이 카니 미국 백악관 대변인은 즉각 “쿠데타로 보기 어렵다”고 밝히며 경찰의 폭력적 시위 진압 을 지적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에 맞서 “(우크라이나 사태는) 혁명이 아니라 조직적 파괴 행위”라며 현 정권을 두둔했다.

런던=이상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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