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또 터진 논문조작, '검은 관행' 이번엔 끊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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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또 황우석 사태의 망령이 되살아났다. 국내 대형 병원 흉부외과 의사들이 데이터를 조작해 국제 유명 저널에 논문을 발표한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최근 서울대 연구진실성위원회는 국내 의사 11명이 미국 흉부외과학회지에 실은 심장기형수술 관련 논문에 부정행위가 있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논문 저자들이 서울대·세브란스·삼성서울·세종 병원 등 국내를 대표하는 의료기관 소속이어서 그 충격은 더 크다.

 논문은 특정 심장수술의 생존율을 부풀렸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논문에는 4개 병원에서 27년간 심장기형 수술을 받은 환자 167명 중 19명만 사망했다고 적혀 있다. 하지만 각 병원의 사망자는 이보다 훨씬 많은 것으로 파악됐다. 결국 데이터를 인위적으로 바꿔 특정 수술의 성공률이 높은 것처럼 꾸몄다는 것이다. 이번 조작 파문으로 국제사회는 또 한 번 한국 연구계를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게 됐다. 특히 특정 수술의 생존율을 믿고 목숨을 맡긴 환자와 그 가족은 이들 의사에게 심한 배신감을 느꼈음에 틀림없다.

 조작 의혹은 논문 저자 중 한 명의 제보로 불거진 것으로 전해졌다. 제보자는 서울대병원에 제공한 숫자와, 실제로 논문에 실린 데이터가 다르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문제를 제기했다는 것이다. 내부 제기자가 있었던 것은 천만다행이다. 하지만 책임 저자로 참여한 서울대 교수는 논문 조작 의혹과 관련해 “의대 관행에 따라 빚어진 일이며, 논문 진행 상황을 제대로 못 챙겼다”고 학교 측에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연구부정이 관행이라면 이는 여간 심각한 사안이 아니다. 앞으로도 논문 조작의 악순환이 되풀이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2006년 황우석 파동을 통해 연구부정의 폐해를 목격했다. 당시 서울대는 “세계 과학계에 오점을 남긴 데 대해 통렬히 반성하면서 오욕을 딛고 새로운 기풍을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올해에도 서울대 수의대 교수가 논문 데이터를 조작한 혐의로 해임되는 등 연구부정이 끊이지 않고 있다. 서울대와 의료계는 연구공동체 내 온정주의에서 벗어나 ‘검은 관행’을 엄하게 징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