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미의 판금 조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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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정부는 정부미 유통 질서에 관한 행정 명령을 발동하여 오는 16일부터 서울·부산·대구·인천에서의 일반 미 판매를 전면 금지시키고 양곡 상들은 정부미만 판매토록 조치했다.
정부는 4대 도시에서 일반 미 판매를 금지한 이유로서 쌀의 소비자 가격 안정을 들고 있다. 즉 산지에 쌀의 재고가 없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용산역두에 일반미가 계속 들어오는 것은 정부미를 재 도정하여 일반미로 둔갑시키는 양곡 상들의 농간 때문이라고 판단, 행정 명령으로써 일반미의 판매를 금지시킨 것이다.
그러나 정부가 지난 7월1일부터 정부미의 유통 자유화 조치를 취했던 점으로 미루어보아 이를 뒤집은 이번 조치는 소비자 보호를 목적으로 한 것이라기보다는 정부미 판매 실적 부진을 극복하려는데 더 큰 목적이 있다고 말해도 결코 무리는 아닐 줄로 안다. 확실히 정부미 판매의 부진은 양곡관리 특별 회계를 「딜레머」에 빠뜨리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정부미 판매를 전제로 하여 짜여졌던 추곡 수매계획을 근본적으로 위태롭게 하고 있어 양정 전반의 기조를 뒤흔들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비상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정부미 판매를 촉진시켜 양정의 기본 전제를 충족시켜야 한다는 것이 정부의 생각이라 하겠는데 이는 양특 회계가 빠진 고충만을 고려한다면 이해할 수 있는 면이 없지 않다.
그러나 이로써 양곡 정책이 또 다시 뒤죽박죽 흔들리게 되리라는 기본 문제에 상도할 때 농정자세의 개혁이 시급함을 우리는 다시 한번 절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며 차제에 농정의 과학화를 강력히 요구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솔직히 말하여 그동안의 농정은 너무나도 통계적인 뒷받침을 받지 못하고 주먹구구식이었음은 숨길 수 없을 것 같다. 정부는 먼저 작년의 추곡 수확고에 대한 추계가 잘못되어 비현실적인 외미 도입 계획이 추진되었고, 그 때문에 오늘날 6백만 섬에 이르는 정부미 재고가 쌓이게 된 것임을 솔직히 시인해야 한다.
정부의 판단대로 정부미가 재 도정되어 일반미로 판매되고 있다면 국민의 쌀 소비량이 갑자기 줄었다는 가정이 성립되지 않는한, 정부미 판매 실적이 줄어야 할 까닭이 없지 않겠는가. 또 정부의 판단대로 일반미의 재고가 사실상 바닥이 나있다면 정부미 판매가 부진함에도 불구하고 쌀값이 수개월간이나 가마당 1만원 선에서 안정되고 있는 사실은 설명할 방법이 없지 않겠는가.
사리가 이와 같다면 재정 자금 조달 원으로서 외 미를 많이 들여오는 편법을 무 사려하게 수용했던 당국의 정책 기조에 근본 문제가 내재되어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는 것이며, 이러한 타성을 탈피하지 않는한, 농업 정책이 정상 궤도를 되찾기는 힘들 것임을 우리는 우려하는 것이다. 또 이번 조치가 박두한 추수기를 앞두고 취해졌다는 점에서 우리는 이 조치가 시한성을 내포하고 있음을 지적해야 하겠다. 이 조치가 지나치게 계연된다면 추수기 미가를 폭락시킬 염려가 있는 것이므로 추수기 미가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적절한 시점에서 이 조치는 해제되어야 할 것임을 특히 강조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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