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5)<제자 윤석오>|<제26화>내가 아는 이 박사 경무대 사계 여록(172)|한갑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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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내가 이 대통령을 가끔 주위에서 뵙게 된 것은 그분을 직접 모셔서가 아니라 주로 간접적인 관계에서였다. 6·25동란과 그 직후에는 영어를 하는 의전장교나 국방부장관 비서실장으로서, 57년부터 4·19까지는 이기붕 국회의장 비서실장으로서 이 박사를 자주 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측면에서 내가 본 이 박사와 얽힌 「에피소드」를 얘기해보고자 한다.
아는 사람은 아는 얘기지만 이 박사가 휴전 직전에 단행한 반공포로석방은 이 대통령과 원용덕 헌병총사령관 선에서만 진행됐을 뿐 국방부장관조차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반공포로가 석방되기 사흘 전, 그러니까 53년 6월 15일로 기억된다. 나는 신태영 국방장관비서실장(공군대령)으로 최용덕·송요찬 장군 등의 무성태극무공훈장 수여식에 훈기낭독을 위해 경무대엘 간 일이 있다.
나의 훈기낭독이 끝나자 이 대통령은 훈장을 달아주고 훈시에 들어갔다. 훈시하는 도중 동경에 있는 「클라크」「유엔」군사령관으로부터 장거리 전화가 왔다는 비서의 전갈이 왔다. 그러자「조크」를 섞어가며 훈시를 하던 이 대통령의 웃던 표정이 확 달라졌다.
『남의 나라 원수에게 조복 입은 사람이 전화로 얘기를 하려 들다니 버릇없는 짓이야. 두어 시간이면 날아올텐데.』
표정이 바뀌며 얼굴에 경련을 일으키자 열중쉬어 자세로 훈시를 듣고있던 장군들까지 자기도 모르게 차려 자세가 되어있었다.
딱딱해진 표정으로 이 박사는 훈시를 계속했다.
난처해진 비서가 『각하, 그러면 전화를 어찌했으면 좋겠습니까』고 채근하자 약 5분간 얘기를 계속하던 이 박사는 전화를 받으러 안으로 들어갔다. 잠깐 전화를 받고 나온 이 대통령은 『저 사람들과 반공포로 석방문제를 의논했으나 자꾸 안 된다고 해. 그러나 내가 석방하고 말테야』하며 단호하게 말했다.
훈장수여식이 끝나자 신 국방장관은 이 대통령을 뒤따라가며 『각하, 그러시다면 반공포로 석방에 관해 지시를 내리십시오.』 『걱정 마. 그 문제는 내가 알아서 할테니 국방장관은 걱정 안 해도 돼.』
그 후 사흘 뒤 53년 6월 18일. 종로구 소격동에 있던 국방부장관 숙소에 새벽같이 기자들이 몰려들었다. 자정을 기해 반공포로가 석방됐으니 장관의 얘기를 듣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때까지 신 장관은 이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난처하고 다급했다. 나는 급히 경무대로 전화를 걸어 기자들이 왔으니 자세히 얘기해달라고 부탁했다.
경무대의 한 비서가 자세한 설명을 해주었다. 신 장관은 내 보고를 토대로 기자회견을 가졌다. 다행히 장관이 보고 받은 가운데 기자들이 모르는 사고가 한 둘 끼여있어 큰 망신은 면할 수 있었다.
이렇게 벼락치기 기자회견을 얼렁뚱땅 마친 신 장관은 침통한 표정으로 내게 국방장관 사표를 써오라고 했다.
신 장관은 곧 사표를 들고 경무대로 들어가 이 대통령을 만났다. 약 20분 가량 이 대통령과 면담하고 나온 신 장관의 표정은 무척 밝았다. 사표를 내자 이 대통령이 한사코 받지 않으며 『그러지 않아도 일이 많은데 이러면 되느냐』고 꾸중을 하더라고 했다.
그런데 얼마 후 미국정부는 국무성차관보였던 「로버트슨」씨를 대통령특사로 우리 나라에 보내 반공포로석방 이후의 문제와 휴전협정타결을 위한 교섭을 벌였다.
「로버트슨」특사 한국체류 중 이 대통령·신 장관과의 3자 회담이 열린 일이 있다. 이 자리에는 경무대측 요청으로 이 대통령의 통역이 필요 없는 만큼 신 장관만을 위한 통역을 배석시키지 못했다. 그러니 신 장관은 회담내용을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한시간 반 동안의 고역을 치르고 나온 신 장관의 표정은 그야말로 낙심천만이었다. 그날 저녁 신 장관은 내게 『안되겠어. 사표 다시 좀 써 줘』-. 그 사표가 수리돼 신 장관은 6월 30일 국방장관직을 물러났다.
화제를 바꾸어 외국사람에 대해 굴하지 않았던 이 박사의 일면을 보이는 「에피소드」를 소개하겠다.
그 해 11월, 휴전이 된 지 1백여일이 지난 뒤 「닉슨」미국부통령이 내한했을 때의 일이다. 나는 국방부 의전장교로 「닉슨」부통령을 모셨다.
「닉슨」은 서울에 도착해 남대문 부근에서 우리 한복을 입은 노인들과 악수하느라 20분을 끈 뒤 경무대로 들어갔다.
경무대 본관 앞 별로 넓지 않은 뜰에서 「닉슨」은 3군 의장대를 사열했다. 「제스처」를 좋아하는 「닉슨」은 여기서도 꼼꼼하게 사열을 하고 3군 대표장교와 얘기를 하느라 40분을 끌었다.
이런 북새 끝에 「닉슨」은 본관 회의실로 들어갔다. 우리생각에는 이 대통령이 적어도 현관까지는 나와 영접하리라고 보았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현관에는 물론 「닉슨」이 제1회의실에 들어선 뒤에야 집무실에서 회의실로 건너왔다. 특별히 호의적인 「제스처」도 없이 자기가 먼저 앉은 뒤에야 「닉슨」에게 앉기를 권하는 것이었다. 이때만이 아니라「아이크」가 대통령에 취임하기 전 우리 나라에 왔을 때도 『공식방문이 아닌데 내가 왜 공항에 나가느냐』고 거절해 주위에서 이 대통령 마음을 돌리느라 큰 고생을 한 일도 있다. 그만큼 이 대통령은 「프로터콜」에 양보가 없는 분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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