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대통령-평검사 토론] 토론 後폭풍…검찰 물갈이 회오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3면

노무현(盧武鉉)대통령과 평검사들의 9일 토론회는 당일 밤 김각영(金珏泳)검찰총장의 전격 사퇴라는 후폭풍을 몰고 왔다.

盧대통령으로부터 토론회에서 "인사 대상"이라는 표현과 함께 수차례의 노골적 불신을 받은 검찰 수뇌부의 벼랑 끝 인식이 곧바로 행동으로 옮겨진 셈이다.

새 정부의 검찰 인사개혁안을 놓고 시작된 검찰조직의 집단 반발도 새 국면을 맞게 됐다.

특히 "인사권을 통해 검찰을 통제하겠다는 새 정부의 의사가 확인됐다"는 金총장의 항명성 퇴임사 내용으로 검찰 내 기류는 '우려'와 '반발'이라는 두 갈래로 나뉘어지고 있다.

金총장의 사퇴로 10일로 예정됐던 인사도 당초보다 폭이 커질 게 확실해지면서 이래저래 뒤숭숭한 분위기가 계속될 참이다.

◆ 검찰총장 사퇴 파장=金총장은 이날 저녁 직접 사퇴 성명을 발표했다. 퇴임하는 검찰총장으로서는 드물게 인사권자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부디 후배 여러분께서는 법에 정한 검사의 신분보장의 정신을 수호하고 정치권으로부터 진정으로 독립한 검찰상을 세워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는 검찰을 만들어 주기를 간곡히 당부한다" 등이다.

서울지검의 한 검사는 "정부에 대해 '절차에 따른 투명한 인사'를 요구해온 만큼 다시 이를 가장 큰 주문이자 명분으로 내세우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대통령과의 대화 자리에서도 평검사들은 "서열 파괴를 통해 선배 정치 검사들을 찍어내는 것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면서 인사 시스템에 의한 신분보장 대책 마련을 강하게 요구했다.

金총장의 사퇴를 "늦은 감이 있다"고 해석하는 기류와는 달리 정부와의 갈등이 더욱 커질 것으로 보는 쪽이 적지 않은 이유다.

현재로서는 후임 총장 자리부터 거침없는 인선이 이뤄질 것임이 거의 분명해 반발기류는 잦아들지 않을 전망이다.

총장 사퇴로 검찰 간부와 평검사 간의 상호 불신감이 깊어질 수도 있다. 대통령 앞에서도 서슴없이 할 말을 했던 평검사들은 앞으로 검찰 간부들에 대해서도 당당하게 대처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청산 대상으로 지목된 일부 간부들은 설 자리가 좁아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평검사들도 金총장의 사퇴를 두고 두 부류로 나뉘고 있다. 대검의 한 검사는 "내부 갈등으로도 번질 수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金총장에게는 康장관이 통보한 파격적인 검찰 인사개혁안을 놓고 평검사까지 들고 일어나는 등 검찰 조직 전체가 위기에 빠졌는데도 위기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다는 비난도 있어왔다.

◆ 쟁점 이견 여전=검사들은 토론회 이후에도 조만간 있을 검사장급 이상 간부 인사부터 평검사가 참여하는 인사위원회의 심의를 거치게 해 달라는 요청을 계속할 예정이다. 이번 인사안이 밀실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검찰 중립성을 해칠 뿐이라는 인식이 바뀌지 않고 있다.

"제도 개혁을 다 하고 검찰 인사를 하려면 시일이 촉박하다"며 강행 방침을 밝힌 盧대통령의 의지와 어떤 형태로든 다시 부딪칠 여지를 남기고 있다.

검사들에 대한 인사제청권을 법무부 장관에서 검찰총장에게로 이양해 달라는 요구도 계속 논란거리가 될 전망이다.

盧대통령은 이날 토론회에서 "법무부 장관에게 인사권을 준 것은 권력기관에 대한 문민 통제를 위한 것으로 현재로서는 이를 이양하기 어렵다"는 논리로 일축했다.

◆ 물갈이 인사 예고=金검찰총장의 전격 사퇴로 검찰 수뇌부를 포함한 검찰 고위 간부에 대한 대대적인 물갈이 인사가 예상된다.

일단 金총장이 반대해온 새 정부의 서열 파괴 인사 안이 그대로 집행될 것으로 전망된다.

盧대통령과 康법무부 장관은 평검사와의 토론회에서도 한 목소리로 "이번 인사를 원칙대로 해 검찰 조직을 안정시키고 추후 단계적으로 개혁을 추진하겠다"고 선언했다.

청와대쪽은 후임 총장에 외부 인사가 임명될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사시 13회 출신인 송광수 대구고검장이 유력하게 거명되는 가운데 그와 사시 동기인 명노승 법무부 차관 등이 하마평에 오른다.사시 14회 이하나,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출신 재야 법조계에서 발탁될 가능성도 있다.

사시 13회 인사가 총장으로 임명되면 그간 관행에 따라 나머지 동기 4명이 동반 사퇴할 가능성이 크다.

이럴 경우 총장 교체에 따른 한자리 외에 지난 7일 동시 퇴임한 사시 12회 3명과 사표를 제출한 김대웅 전 광주고검장, 공석인 대전고검장 자리 등 검사장급 이상이 10자리 가량 비게 된다.

만약 14,15회에서 총장이 나오면 검사장급 이상 간부 36명 중 절반 이상이 인사 태풍에 휩싸이게 된다.

조강수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