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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서 자라 월남한 외교관 출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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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허심탄회한 마음으로 상대방을 맞아야 합니다. 회담에는 상대방이 있기 때문에 내가 꼭 상대방보다 나아야겠다고 생각하면 할수록 마음이 초조해져 오히려 몰리게 마련입니다. 활 안을 뜨고 좀 높은 경지에서 넓게 봐야 상대방을 간파할 수도 있고 임기응변도 제 때에 나오지요.』오랜 외교관 생활 끝에 터득한 이범석 수석대표의 회담참석자세다.
이 수석대표는 이미 휴전직후 포로송환 적십자위원회 한국수석대표로 북한 측 대표와 회담한 경험이 있어 공산측과의 회담이 전혀 생소하지 않다.
『남북적십자 예비회담을 직접 가보지는 않았지만 그 당시 북한 측 대표와 비교할 때 많이 달라진 것 같습니다. 특히 북한적십자사 수석대표 김태희는 외교관 출신이라서 세련돼 있는 느낌입니다.』이 수석대표는 포로송환 회담 때를 회상하면서 많은 변화를 느낀다고 말했다.
이씨는 외교관으로 많이 알려졌지만 외교관이기 전에 적십자 인이었다.
적십자 청소년부장으로 청소년적십자(JRC)를 창설했고 서울지사 사무국장, 제19차 국제적십자회의 한국대표, 청소년지도자 국제회의 대표 등 적십자 인으로 활약했다.
이씨가 외교관이 된 것은 1960년 4·19직후. 외무부2등 서기관으로 출발, 10년만에 일약 주「튀니지」대사로 발탁되어 우리 나라 외교계에서 가장 승진이 빠른 기록을 세웠다.
이 수석대표는 이번 평양행이 남다른 감회가 더 있다. 출생은 평우강서 이지만 줄곧 평양에서 자라 평2중을 그곳에서 다니다 8·15직후인 46년에 월남, 평양은 제2의 고향이기 때문이다.
『평양거리야 눈감고도 훤합니다. 6·25때 부서져서 지금은 많이 달라졌을 겁니다만 대동강·을밀대·능라도 등 산천은 옛날모습 그대로겠지요. 』잠시 고향생각에 잠기는 듯 이씨는 눈을 감았다.
『지난70년 주「튀니지」대사로 임명됐는데 얼마 되지 않아 본부대기 대사로 발령 받고 귀국, 옆에서 남북적십자 예비회담을 지켜보며 뒷바라지도 했다』는 이씨가 지난7월25일 대한적십자사 부총재로 선임되자 남북적십자 본 회담 수석대표가 된다는 항설이 굳어졌었다. 솔직하고 담력 있고 설득력이 있다는 것이 이씨를 잘 아는 주위사람들의 평이다. 틈 나는 대로 천호동에 있는 1만여 평의 농장에 나가 돼지를 키우거나 묘목을 어루만지는 것이 취미.
고대영문학과와 미국 「조지·워싱턴」대학원에서 국제정치학을 전공한 이씨는 부산 피란 시절 이정숙씨와 결혼, 슬하에 1남4녀를 두고 있다. 장인은 전 국무총리 서리를 지낸 이윤영씨.<김영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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