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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유지의 비극, 공기업의 비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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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김종윤
뉴미디어 에디터

처음에는 쉬운 것 같지만 뜯어볼수록 답을 내기 어려운 문제가 있다. 이 질문에 답해보시라. ‘공기업의 주인은 누구인가’.

먼저 ‘정부’를 떠올린다. 정권이 바뀌면 새 정부가 공기업의 헌 사장을 날리고, 새 낙하산을 내려보내는 걸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다. 그것도 대부분 청와대에서 낙점한다고 하니 공기업은 정부, 특히 청와대가 주인인가 보다.

 곰곰 생각해보니 아닌 것 같다. 공기업이 부실해지면 국민 세금으로 막아준다. 공기업이 사경을 헤맬 때 산소호흡기를 대주는 주체는 국민이다. 그럼 공기업의 주인은 국민인가. 그럴싸하긴 한데 허망하다. 국민은 피상적이다. 실체가 없다. 대한민국 국민 누구도 ‘내가 공기업의 주인이다’고 생각해본 적도, 공기업 경영에 나서본 적도 없다.

 그럼 직원들이 공기업의 주인인가. 그럴듯하다. 이들은 철밥통이다. 일 안 하고 대충 때워도 잘리지 않는다. 적자가 쌓여도 이런저런 명분으로 고액의 임금을 받는다. 복지도 화려하다. 회사 돈도 마음대로 펑펑 쓴다. 주인 아니면 할 수 없는 짓을 하니 주인인가 보다. 한데 2% 부족하다. 비록 ‘신(神)도 부러워하는 직장’이지만 이들도 피고용인이니만큼 주인이라고 하긴 어렵다. 이쯤 되니 답이 나온다. 공기업의 주인은 없다. 공기업은 사실상 임자 없는 공유지와 다를 바 없다. 주인 없는 목초지에 소 주인들은 서로 소를 풀어놓는다. 소들은 앞다퉈 풀을 뜯어 먹는다. 내 땅이 아니니 챙겨가기에 정신없다. 목초지는 황폐해지고 결국 소는 먹을 풀이 없어 굶어 죽게 된다. 이런 공유지의 비극, 공기업의 비극으로 전이된다.

 박근혜정부가 공기업을 개혁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현오석 부총리는 “파티는 끝났다”고 일갈했다. 목소리는 결연했다. 하지만 본질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낙하산 타고 내려온 사장이 공기업을 내 회사처럼 경영할 리 없다. 그는 3년 임기 동안 단물 빨아 먹을 생각만 한다. 이런 약점투성이 사장을 잘 아는 노조는 사장과 야합한다. 사장은 적당히 눈감아주고 노조도 곶감 빼먹기에 정신이 없다. 주인 없는 목초지의 풀은 먼저 뜯어 먹는 게 임자다. 공기업은 태생적으로 ‘방만 경영’이라는 유전인자를 갖고 있다.

물론 주인의식 있는 사장을 임명하고, 직원을 육성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하지만 이건 순진하기 짝이 없는 생각이다. 선거 때 도왔다고 한 자리 달라며 아귀처럼 달려드는 무리를 못 본 체할 권력은 없다. 박근혜정부도 말로는 “공기업, 잔치는 끝났다”고 했지만 뒤에서는 정권 창출에 기여했다는 인사들을 황금 낙하산에 실어 속속 투하하고 있다. 이런 이율배반적 정권이 공기업 개혁을 할 수 있을까. 공기업 개혁의 핵심은 민영화다. 그런데도 박근혜정부는 민영화를 한마디도 꺼내지 않는다. 주인이 있어야만 아끼고, 벌기 위해 애쓰고, 미래를 설계한다. 민영화 없는 공기업 개혁은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다.

김종윤 뉴미디어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