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의 불량채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6월말로 마감한 시중은행의 불량채권정비작업은 결국 시은이 담보부동산을 인수하는 형식으로 매듭지어 졌다. 시은의 불량채권정리 작업으로 유입한 부동산은 1천9백88건에 3백83억 원이나 된다고 하는데, 그중 시은이 인수한 뒤 매각처분 한 것은 고작 37억2천만 원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앞으로 발생할 불량채권도 결국 은행이 인수해야할 것이라는 예측이 성립된다 하겠으며, 때문에 금융운영이 지난날의 방식을 탈피하지 않는 한, 이 나라 금융은 머지않아 자금의 고정화라는 근원적인 모순에 직면하지 않을 수 없는 심각한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하겠다.
당국은 그 동안의 이른바 부실기업정리작업에서 발견한 기본적인 문제점들을 깊이 검토해서 획기적인 금융정화의 계기로 활용해야 하겠음을 특히 강조하면서 이에 대한 우리의 의견을 밝혀두고자 한다.
첫째, 금융부실화와 기업부실화는 표리관계임을 직시해야 하겠다.
따라서 기업의 부실화를 사전에 예방할 수 있는 제도적인 방법이 강구되지 않고서는 앞으로도 계속 불량채권을 은행이 인수해야 할 것은 뻔하다.
물론 정부나 금융기관이 기업의 부실화를 예방할 수는 없다는 주장이 당연히 성립될 수 있다. 그러나 이 나라기업의 대부분이 차관 또는 은행대출로 설립·운영되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한다면, 기업부실화를 당국이나 은행이 예방할 수 있는 길은 엄연히 있다고 봄이 옳을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차관도입을 허가할 때부터 기업 성을 충분히 검토하였더라면 오늘날과 같은 부실기업의 속출현상은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금융기관이 여신을 할 때, 차주의 재력과 기업운영능력, 그리고 사업성을 제대로 검토했더라면 사태는 달라졌을 것이다.
둘째, 지난날의 차관도입과 금융기관여신이 맹목적으로 이루어진 이유를 당국은 깊이 검토해서 이를 다시는 반복하지 않도록 조치해야 할 것이다. 즉 경제적 척도에 따라서만 차관이 허용되고 여신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당국은 차제에 근본적인 제도개선을 시도해야 하겠다.
이와 관련해서 당국이 시급히 서둘러야 할 것은 경제행위에 대한 권력의 개입을 철저히 배제하는 결단이라 하겠으며, 이를 외면하고서는 어떠한 개선책도 실효를 거두기 어려울 것임을 직시해야겠다. 당국은 차제에 명실상부한 시중은행의 민영화와 아울러 금융의 자율화·중립화를 보장할 방법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셋째, 당국이나 금융기관은 이른바 구제금융의 속성을 충분히 파악해서 사회적 자금의 끝없는 낭비를 방지해야할 것이다. 솔직히 말하여, 오늘날 금융기관이 보유하고 있는 불량채권은 유입된 3백83억 원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이보다 훨씬 많은 금액이 증대 또는 담보보강형식으로 정상화된 것처럼 호전되었지만, 그중 상당부분은 결국 다시 은행이 인수해야할 성질의 것이다.
이처럼 은행이 무한히 기업에 말려든다면 금융정상화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일 찌기 지원을 중단하는 것이 불량채권의 누적을 막고 사회자본을 소비하지 않는 최선의 길임을 관계자들은 직시하기를 바란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