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후 1년] 서울 야간진료 늘린다더니 … 환자 헛걸음 발동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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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가 야간·휴일 진료기관으로 선정한 한 병원. 서울시 홈페이지에 오후 10시까지 진료하는 것으로 돼 있다. 하지만 지난 12일 오후 9시에 찾아갔더니 진료가 끝난 상태였다. [장혁진 기자]

상반기 점검 결과 354차례 빨리 문 닫아

두 살짜리 딸아이를 키우는 김모(32·여)씨는 지난 22일 서울 중랑구에 있는 친정집에 갔다가 아찔한 경험을 했다. 오후 8시가 넘어 딸이 갑자기 고열 증세를 일으키면서였다. 중랑구에서 야간진료를 하는 소아과를 ‘119’ 등을 통해 급하게 찾았지만 허사였다. 이 지역엔 서울시가 지정한 ‘야간·휴일 진료기관’이 3곳이나 되지만 평일 야간 진료를 하는 곳이 한 곳도 없었다. 결국 김씨는 대형병원 응급실로 가야만 했다.

 서울 중구의 A산부인과도 서울시 지정 야간·휴일 진료기관이다. 서울시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이 병원의 진료시간은 오후 10시까지. 진료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기자가 지난 12일 오후 9시 병원을 찾아갔다. 하지만 병원 진료는 이미 끝나 있었다. 당직을 서던 간호사는 “병원 진료는 한 시간 전에 끝났고 지금은 응급피임약 처방과 응급 분만 환자만 받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 야간·휴일 진료병원 사업이 시행 1년 만에 위기를 맞고 있다. 이 사업은 지난해 11월 시작됐다. 낮 시간에 진료를 받기 힘든 직장인 등이 야간이나 주말에 집 근처 병·의원에서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의료 혜택의 폭을 넓히기 위해서였다. 서울시가 지정한 시간(평일 오후 7~11시, 토요일 오후 3~6시, 일요일 오전 9시~오후 6시)에 병원을 찾은 환자 1명당 6000원을 병원에 지원해 준다. 민간병원에 지원금을 줘 야간 진료 확대를 유도하자는 취지다. 현재 58곳의 병원이 야간·휴일 진료병원으로 지정돼 있다.

원래 하던 55곳 외 신규 병원은 3곳뿐

 하지만 본지 확인 결과 서울시 지정 후 야간·휴일 진료를 새로 시작한 곳은 3곳에 불과했다. 대부분의 병원은 서울시가 지정하기 전부터 야간·휴일 진료를 해 왔다고 답했다. 서울시가 지정한 야간·휴일 병원 58곳을 확인한 결과다.

실제로 야간·휴일 진료를 하는 병원은 늘지 않고 이전부터 야간 진료를 하거나 응급실을 운영하던 병원들이 보조금을 받게 된 것이다. 야간·휴일 병원으로 지정된 서울시 영등포구의 한 병원 관계자는 “병원 경영이 어려워져 사업 신청을 했다”며 “원래 응급실을 운영하고 있어서 추가 부담이 없는데다 지원금도 주니 우리 병원 입장에선 좋은 제도”라고 말했다. 서울시 박유미 보건의료정책과장은 “야간 진료를 새로 시작한 병원은 적어도 진료시간이 늘어난 병원이 많아 야간 진료 확대에 기여했다”고 말했다.

 내년 예산도 대폭 삭감됐다. 서울시가 시의회에 제출한 내년도 예산안에 따르면 야간·휴일 진료병원 사업 예산은 28억9332만원이다. 올해 45억9684만원보다 17억원이 줄었다. 애초 사업 목표인 야간·휴일 진료 확대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반증이다.

기존 병원들 보조금 받는 사업 전락

 진료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본지가 지난 12일 오후 9~10시 서울시 홈페이지에 게재된 야간 병원 36곳의 진료 여부를 확인한 결과 8곳(22%)이 진료를 하지 않았다. 도봉구의 한 병원은 “정형외과 전문의가 진료 중이니 고열인 경우에는 다른 병원을 찾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답했다.

서울시가 올해 상반기 2297회 진료 여부를 확인한 결과 진료를 조기에 끝낸 경우가 247회(11%)였다. 아예 진료를 하지 않는 경우도 107회(5%)였다. 동대문구의 야간 진료기관을 찾은 장관일(39·월계동)씨는 “야간 병원으로 지정된 병원의 진료시간이 일정하지 않다면 환자 입장에선 그냥 응급실을 가는 게 나을 것”이라고 말했다.

 야간 진료기관이 없는 자치구도 용산구·중랑구·강북구 등 5곳이나 됐다.

 이런 혼란은 예견된 결과라는 지적도 나온다. 병원 여건을 무시한 채 무리하게 추진했다는 점에서다.

서울시 의사회 최승일 의무이사는 “새로 야간·휴일 진료를 시작하려면 초기 비용 부담이 만만치 않게 들어 의사회에선 처음부터 반대한 사업”이라며 “서울시가 제시한 진료 건당 6000원 보조금은 신규 참여하기엔 수지가 맞지 않는 액수”라고 말했다.

안효성·구혜진·장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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