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30대 주체」쉴 날이 없다|전북 고창 문화원장 이기화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취미가 「주례를 맡는 일」이라는 전북 고창군 고창읍 고창문화원장 이기화씨(38). 주례치고는 너무 젊은 나이였다. 그러나 15년 동안 남의 궂은 일, 어려운 일이라면 자기 일처럼 발벗고 나서 일해오면서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는 것이다.
집에서는 「내 논 사람」으로 핀잔을 맞으면서도 이씨는 애써 일한 보람으로 62년 상록수로 뽑히기까지 했다.
지난 24일. 고창문화원 무료예식장에서 신랑 신용석군(28·고창읍 읍내리) 과 신부 이재희양(26·신림면 평월리)의 결혼식이 있었다. 주례는 물론 문화원장 이씨.
이 원장은 지난 69년4월 문화원 2층이 무료예식장으로 개방된 이래 94번째 주례를 맡았던 것.
결혼식은 가정의례준칙에 따라 단 15분만에 끝나고 신혼부부는 문화원 앞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이씨의 주례사는 짤막한 것이었으나 주례 이씨는 신혼부부를 「버스」에까지 안내하고 흐뭇해했다.
이씨가 주례선생으로 된 연유는 남의 어려움을 보고 견디지 못하는 성품 탓이었다. 57년 이씨는 국민학교 교사로 재직 2년째였다. 그는 고창읍내에만도 가정이 빈곤하여 중학교에 진학을 못한 학생들이 많은 것을 알고 고창 야간중학교를 세우고 자신이 가르치기 시작했다.
이것이 인연이 되어 성년이 된 제자들은 결혼 때면 꼭 주례를 서줄 것을 조르기 일수였다.
이씨는 주례를 설만큼 나이든 것이 아니었지만 제자들의 간청에 주례를 맡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무료로 제공된 문화원 2층 강당에서는 이씨의 주례로 제자들의 결혼식이 잇달았다.
이씨는 30평되는 문화원 2층을 일반 개업 예식장에 비해 손색이 없게 만들기로 했다.
그 고장 출신 모 실업인으로부터 성금을 얻어 말끔히 식장내부를 꾸몄다.
신부 「드레스」와 촛대를 군수 등 기관장의 협조로 구입했다.
문화원 「오르간」도 식장 전용으로 옮겨놓았다.
1장에 2천원 짜리 사진을 9백원에, 2천원 드는 신부화장을 1천원에 할 수 있도록 주선했다.
이런 덕택에 1만5천∼2만원 들던 결혼식장 실제비용은 2∼3천원으로 줄었고 답례품도 없어졌다.
이씨는 잔치도 일삼아 말리고 다녔다. 무료예식장이 이렇게 제대로 꾸며지고 새로운 결혼비용절약기풍이 생기자 일반예식장의 반발이 빗발친 것은 물론이었다.
그러나 군수 등 관내 기관장·유지들이 가정의례준칙을 지켜야 한다고 설득시켰다.
이씨의 주례는 식장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 중평. 결혼 후 가정생활도 지도해주고 있다.
따라서 신혼가정에 무슨 일이 생기면 으례 이씨를 찾기 마련이었다고. 그만큼 이씨는 기쁜 일, 궂은일을 다해 내왔다고 했다.
69년 4월의 일이었다.
국민학교 제자인 신모씨(30·고창읍)가 서모양(27·고창군 해리면)과 결혼 날짜를 잡자 신씨를 좋아했던 동리 처녀가 저수지에 투신자살을 해버렸다. 자살한 처녀의 집안이 발칵 뒤집힐 수밖에-.
처녀의 집에서 요구하는 대로 신씨는 이씨의 주례로 자살한 처녀의 영혼과 결혼식을 올렸다.
그리고 이씨의 주선과 끈질긴 설득으로서 양 가족의 양해를 얻어 신씨는 다시 서양을 신부로 맞을 수 있었다.
이씨는 56년 이리농대를 졸업, 2년간 국민학교 교사로 일하다가 고창야간 중학교를 설립, 5년 동안 농촌 불우 청소년을 지도한 보람으로 62년 제1회 「살아있는 상록수」상을 받은바 있다.
이때 받은 상금 2백 만원을 몽땅 고창문화원에 투자, 모범문화원을 만들고 10년째 무보수 문화 원장 직을 맡아오고 있다.
이 원장이 이런 일을 하는 동안 부인과 1남3녀 등 5식구의 생활은 논 8단보를 부인 이순례씨(34)가 영농, 겨우 살아가는 정도였다.
『가장으로는 영점을 받을만 하다』하나 『농촌일수록 그만큼 해야할 일이 생활주변에는 많다』며 이씨는 『기왕 시작한 일이니 계속 주례만큼은 해내겠다』고 말했다. <고창=양정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