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지제도의 과도적 입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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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농림부는 경제개발과 도시지역의 팽창으로 늘어나고 있는 농경지의 잠식을 막고 농업생산력의 증가를 목적으로 하는 「농경지의 보전 및 이용에 관한 특별 조치법(안)」을 마련해서 농정 심의위에 들렸다 한다.
23일 김보현 농림이 밝힌 이 법안의 주요 내용에 따르면, 농경지를 전용할 경우, 농림부의 승인을 받도록 하며 지주에게 경작의 의무를 부과하되 이 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때에는 제삼자로 하여금 대리 경작토록 한다는 것이다.
또한 2년 이상 최저 기준 수확량에 미달하는 수확지에 대해서도 제삼자로 하여금 대리 경작케 하며 이에 따른 지주의 수익 분배는 기준수확량의 20%로 정하고 있다.
그간 경제개발에 따른 공장입지의 확대와 인구의 도시집중현상 등이 가져온 부작용으로서 적지 않은 농경지가 잠식되어 왔음은 널리 알려진 일이다. 여기에 토지투기의 대상이 도시의 근교나, 신흥공업단지주변 등에 집중됨으로써 농경지의 감소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식량증산에 온갖 힘을 쏟아야 할 현 단계에서 지금까지 산업화 및 도시화의 여파를 입어 온 농경지의 감소경향에, 근본적인 대책을 세우고, 이를 종합국토개발계획과의 연관하에서 합리적으로 대처해 나가야 할 필요성은 매우 절실한 것이 사실이다.
때문에 이 문제해결에 적극적인 자세로 나서고 있는 농림부의 방침자체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이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법의 주요내용이 내포하고 있는 몇 가지 문제점도 문제점이지만, 그에 앞서 이 같은 성격의 법안이 제정됐을 경우, 우리 나라의 경제·사회구조의 기반변동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됨을 생각할 때, 특별법에 의한 과도적 입법으로, 기본적 제도의 변경을 성급하게 추진한다는 것은 선뜻 찬동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해방 후 공포된 농지개혁법이 사실상 사문화 함으로써 지주와 경작자의 임대방식에 의한 실질적인 소작제도가 널리 퍼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른바 경작유전의 형식적인 명분만 살아 있을 뿐 변동되는 농지의 실태에 대응할 만한 기본제도가 없는 것도 이번의 입법을 추진하게 된 커다란 이유일 것이지만, 바로 그러한 문제의 중요성에 비추어 농지제도를 본질적으로 정비할 수 있는 기본법을 좀 더 신중한 접근방법으로서 제정함이 정도가 아니겠는가 싶은 것이다.
첫째는 소유주가 분명치 않은 휴경지의 경우는 제외하고, 지주에 대해서 경작의 의무를 강제화하고, 부실 경작지를 대리 경작케 하는 등의 재산권의 제한은 이것이 부분적인 규모가 아니라는 점에서 헌법 제1백14조에 의한 근거에도 불구하고 논의의 여지가 없지 않을 것이다.
다음으로 가사, 재산권의 의무를 강조하여 유휴농지의 경작을 강제화 한다 하더라도 2년 이상 농림부가 정하는 기준수확량에 미치지 못하는 농지까지 대리 경작케 하며 20%만을 소유주에게 분배하도록 하고 있는 것은 실지 집행 면에서 분규와 말썽이 일어날 요인을 안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또한 이와 관련되어 강제집행에 따른 농지의 임대경작을 법적으로 허용하는 문제에 있어서도 비록 사실상의 부재지주 및 소작제도가 성행되고 있는 현실을 양성화하는 것이기는 하나, 아직까지 뚜렷한 사회통념인 경작유전의 원칙이 크게 후퇴함을 의미한다는 문제점도 없지 않을 것이다.
농림부에선 이 법을 과도적인 입법이며, 새로운 농지법안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하나, 설사 과도적인 입법일 망정 이것이 앞으로 제정될 기본법의 기틀을 좌우하게 된다고 할 때, 우리 나라 농지제도의 효율화라는 측면에서 보다 신중한 태세가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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